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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린 짐승이 되어,
똑바로 서는 법을 잊고 당신만을 바라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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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10. 10

KPC │오드

PC │레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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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는 잠 못 이루고
 
W. 체리밤
 
2021.10.10
 
KPC 오드
 
PC 레이시
 
00. 1일차, 오후.
 
아무래도 덜컹이는 마차 안에서 편히 휴식을 취하는 건 역시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벌써 몇 시간째 마차에 타고 있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주변의 높은 건물들이 하나 둘 사라지고 나무와 들꽃이 빽빽하게 시야를 채운 다음에도 한참을 더 이동하였죠.
 
하지만 당신의 목적지인 그 '마을'은 아직도 한참 남은 모양입니다.
 
당신의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말을 모는 마부는 그저 넉살 좋게 당신에게 말을 건넵니다.
 
조약돌이 말발굽에 치여 자그락대는 소리가 선연히 귀를 울립니다.
 
: 이제 정말 금방입니다요. 방금 삼거리를 지났으니 해가 떨어지기 전에는 도착하겠구먼요…… 어휴, 지루하셨죠? 정말 금방이니 조금만 더 기다려주십쇼.
그나저나 신사분, 그 깡촌엔 왜 가는 거라고 하셨죠? 동행인두 없이 홀몸으로.
 
레이시:(그는 퍽 과묵한 사내에 속했기 때문에 마차를 타면서도 먼저 말한 적은 없다시피 했다. 묻는 말에나 대답할 뿐이었지. 지금처럼.) ……황궁에서 명이 내려왔소. 가벼운 일이라 취급되어 나 홀로 파견되었지만, 심각한 사태라 판단되면 군을 끌고 다시 오게 되겠지.
 
당신의 대답에 고개를 주억거리더니, 지치지도 않고 신나게 떠들어대던 마부가 일순 말을 멈추었다가 탄성을 내뱉습니다.
 
: 다 왔네요! 신사분, 오른쪽을 좀 보십쇼. 호수가 보이시죠? 마을이 호수 바로 옆입니다!
 
그 말과 함께 눈앞에 호수가 펼쳐집니다.
 
기실 눈에 보이는 광경은 찬란하다는 말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눈이 부실 만큼 화려하거나 운하에 비견될 만큼 크지도 않기에 누군가는 초라하다고 감히 말할 법도 합니다.
 
하지만 깨끗한 것, 고요한 아름다움, 가공─훼손─되지 않은 정갈함과 날것 그대로의 고귀함이 호수에 깃들어 있습니다.
 
물기를 머금은 호숫가 특유의 서늘한 공기가 허파에 밀려들고 마부의 웃음 소리가 들려옵니다.
 
: 다 왔습니다. 이제 내리시면 됩니다!
 
마을의 입구, 조촐한 환영 간판이 하나 덩그러니 세워진 골목에 마차를 세운 마부는 말에서 훌쩍 뛰어내린 후 문을 열어줍니다.
 
레이시:(원래 이런 자연 풍경에서부터 탄성을 가지기란, 그에게 쉽지 않은 일이었음에도.) ……고맙네. (그는 서두르지는 않았지만 지체 말고 마차에서 내렸다. 이곳인가.)
 
……그리고 당신과 당신의 짐이 마차에서 완전히 내리고 마부가 떠나고 나자, 조금 떨어진 곳에서 서성이던 여자 한 명이 슬그머니 당신에게 다가옵니다.
 
그러고 보니 마을 입구에서부터는 주민이 나와서 안내해주기로 했던가요.
 
붉은 머리를 풀어헤친 채 어깨 위로 두른 숄을 꼭 붙잡은 여자는 당신의 앞에 서고 나서도 한참 말이 없습니다.
 
그저 어딘가 넋을 놓은 표정으로 당신을 바라볼 뿐입니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치고 서로를 응시합니다. 아주 오랫동안.
 
오드:저, 아, 혹시… 기사님이신가요? (여자는 뒤늦게 정신을 차렸는지 허둥지둥 한 걸음 가까이로 다가선다.) 죄송해요, 제가 외부인을 뵌 것이 간만이라 조금 놀라서… 아, 어서 들어오세요. 마을로 안내해드릴게요. (제법 차분하게 뒷말을 이으면서도 홀린 듯 바라보는 시선은 완전히 거두지를 못하고서.)
 
레이시:(순간 정신이 멍해지는 기분이 들었지만, 착각이라 생각할 따름이었다. 눈을 한 차례 깜빡이면 상념이 갈무리된다. 머리 하나는 저보다 작은 여성의 얼굴을 꽤 유심히 바라보는 성 싶었지만.) ……오래 기다렸습니까? (우선은, 짧은 물음부터 대화를 시작하도록 한다.)
 
오드:아뇨, 방금… 방금 나왔어요. (저를 향한 시선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로 멍하니 중얼였다. 어느 순간 얼굴을 확 붉히며 뒤돌아서자 머리칼이 어지러이 흩날렸다. 황급히 앞장서 걸음을 걷는 모습이 어딘가 뻣뻣한 것은 착각일까.) 먼 길 오느라 피곤하셨을 텐데, 어서 가요. 여관에 묵으실 곳을 마련해두었대요. (마음이 급해서는 내딛는 발이 자꾸만 휘청였다. 말을 더듬지 않으려 애쓰며 문장을 잇는다.) 저희 마을에 온 것은 처음이시지요? 풍경이 참 아름다운 곳이에요, 호수도 그렇구요…….
 
레이시:(뻣뻣한 움직임이며 붉어진 얼굴을 보고서도 이 목석같은 남자가 생각하는 것이란, '혹시. 어디라도 아픈 건가?' 에 불과했다. 남들이 보면 손가락질 할 모습에 틀림 없었지! 당신의 뒤를 따라 걸어가면서도 기어코 휘청이는 모습이 눈 안에 들어오면, 그는 사감 없이 손을 뻗어 당신의 한쪽 팔을 툭 붙잡고 말았다.) 마을에 온 것은 처음입니다만, 아무래도 마을 측에선 사람을 잘못 보낸 듯 하군. (그의 그림자가 당신의 다리를 어른어른 적셨다.) 어디 아프기라도 한 겁니까?
 
오드:(튀어나올뻔한 비명을 입술을 꾹 깨물어 참아낸다. 맞닿은 팔에서 맥박이 너무 빠르게 뛰었다. 혹여라도 뛰는 심장 소리가 당신에게 들릴까,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고개를 돌린다. 온통 붉어진 얼굴이 슬그머니 당신을 바라보았다.) 아뇨, 그런 게 아니라요……. (얼른 놓아 달라고 청하고 싶은 마음 반, 영영 놓지 말라고 붙잡고 싶은 마음이 반이었다. 치열한 갈등 끝에 결국은 후자가 승리했는지.) ……저 앞에서 잠깐… 넘어져서 그래요. 괜찮답니다아…. (말 끝을 늘이면서 은근슬쩍 당신의 팔을 붙들고 똑바로 선다. 당신 얼굴을 볼 낯이 없어 시선을 발 끝으로 떨군채 잡은 손에만 힘을 주었다.) …어제까지는 정말 멀쩡했는데.
 
레이시:(온통 붉어진 얼굴이 저를 향했을 때, 그는 왜 순간적으로 심장의 통증을 느껴야만 했나. 착각이었나? 그도 아니라면…….) 그런 게 아니라? (어쨌거나 다시 눈 앞의 당신에게 집중하는 까닭은, 굳이 명명하자면 머리카락 빛이 유독 시선에 들어왔기 때문에. 잡은 손에 주어지는 힘이 가녀리면서도 누구보다 자기 자신을 확연히 드러내고자 하는 의지를 가졌기 때문에. 그는 고민하다 말을 붙였다.) 저를 안내해주시러 오다가? ……이곳은 마을이 꽤나 작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안에 의원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정녕 없는 것인지요. (그의 시선이 무감함을 품고서도 당신의 다리 부근으로 향했다.)
 
오드:…아니, 의원을 뵈러 갈 정도는 아니구요. 살짝 삐끗한 정도라서, 하, 하핫. (어색하게 웃으면서 다쳤다고 주장하는 다리를 슬그머니 감추었다. 쏠린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는지 당신을 재촉하듯 붙잡은 팔을 끌어당겼다.) 그냥 얼른 가요. 침 바르면 낫겠죠, 뭐어. 기사님? 저어기 보이는 여관이 목적지랍니다. 자아, 빨리 가요. 곧 해가 질 거예요!
 
시골 특유의 흙 냄새와 공기 냄새 그리고 물 냄새가 한껏 느껴지는 마을, 오드와 대화를 나누며 걷다 보니 벌써 여관 앞에 도착했습니다.
 
그녀의 말로는 이 여관이 마을에 위치한 유일한 여관이라고 하는데요.
 
오드:잠시만요. 여기 사람들은 외지인에게 그리 살갑지 않아요. 여기에서 잠시 기다려주세요. 제가 들어가서 열쇠를 받아 올게요.
 
오드는 그렇게 말하며 당신을 여관 앞에 두고 먼저 안으로 들어갑니다.
 
오드:(여관 안으로 쏙 사라졌다.)
 
레이시:(쏙?)
 
오드:(안쪽에서 한참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가 들리더니, 고개가 쏙 빠져나왔다.) 저기…
 
오드는 조금 곤란한 낯을 하고 우물쭈물하다가 입을 뗍니다. 타오르는 오후의 붉은 햇빛을 받아 그녀의 얼굴 가장자리가 밝게 빛납니다.
 
오드:저, 죄송한데…… 여관에 자리가 없다고 하시네요, 워낙 고지식하고 엄격한 분이신지라 따로 해결 방안을 마련해주실 것 같지도 않은데…….
(그리 말한 오드는 조금 뜸을 들이다가 당신의 눈치를 살피며 덧붙였다.) …혹시 괜찮으시다면, 저희 집에 묵어가지 않으시겠어요?
 
<심리학> 판정.
 
레이시:……그대의 집에?
심리학
기준치: 60/30/12
굴림: 86
판정결과: 실패
 
오드는 여관에 자리가 없는 것이 제 잘못인 마냥 미안해서 어쩔 줄을 몰라 하고 있습니다. 마치 제 잘못인 것처럼요. 먼저 달래주는 게 좋을지도요…….
 
레이시:(그는 잠시 침묵하다 입을 열었다.) 우선, 알겠습니다. ……그러나 외지인이기도 하고, (알겠다는 말을 했다지만, 그렇다고 머리가 아프지 않다는 소리는 또 아니라서. 손가락으로 가만 미간을 꾹 눌렀다.) 외간, ……남자이지 않겠습니까. 사실 노숙을 해도 괜찮습니다. 그대는 조금 더 경계심을 가지는 편이 좋을 듯 하겠습니다. (이렇게까지 말했으니 뜻이 바뀌진 않았으려나. 그런 시선으로 당신을 보았다.)
 
오드:아뇨, 아뇨, 괜찮은데요! (재빠르게 고개를 저으면서 얼른 한 발짝을 내딛는다. 두 손 꼭 움켜쥔 채 눈을 빛내면서 당신을 올려다보았다.) 저희 마을을 도우러 오신 분인데, 노숙이라니요. 제 마음이 불편해서 그렇게는 안 되겠어요. 마침 저희 집에 남는 방이 있어서 그러니 편히 쉬어 가셔요, 네? …
 
레이시:(마음이 불편해서. 명목은 그럴싸했다. 하지만 나름 황궁의 제 2 기사단장 타이틀까지 지니고 있는 그로서는 의심할 수밖에 없는 일 아니었나. 객관적으로 봤을 때 그의 얼굴은 심지어 뺨을 반절 정도 가로지르는 흉터까지 존재한 점을 더해, 흉악한 편에 속했다. 거기다 덩치도 크고, 매사에 무뚝뚝했고. ……내가 무섭지 않은가? 그는 어쩐지 당신의 경계심 없는 모습-이라 판단되는-에 한숨이 나오는 기분을 가져야만 했다.) ……문의 잠금쇠같은, 방범 장치는 확실히 존재합니까? (미간을 누르는 손가락을 거두지 않은 것이 그 이유였다.)
 
오드:으음, 응, 물론이죠? (기억 안 난다. 일단 맞장구쳤다.) 무엇보다 기사님께서 그런 무뢰한일 거라는 생각은 안 드는걸요. (거의 다 넘어왔다는 생각에 방긋 웃었다. 기대감에 들뜬 얼굴로 당신의 소맷자락을 붙잡아 끌어당긴다.) 그러면 허락하신 거죠? 네? 저희 집은 이쪽이에요. 얼른 가요! (아프다고 거짓말했던 일은 죄 까먹은 건지, 너무 멀쩡한 걸음으로 신이 나서 앞장선다.)
 
레이시:(그리고 그는 분명히 그 멀쩡한 걸음걸이를 보았다. 저를 집에 끌어들이는 어떤, 바람이 있었던 것도. 그가 원했다면 다시 혼자 여관 주인에게로 향해 '자리가 정말 없었는지' 물어볼 수 있었겠으나…… 어째서인지, 그는 얌전히 당신의 뒤를 따를 뿐이었다.)
 
1일차, 밤.
 
여관에서 쫓겨난 후 오드의 집으로 향하던 차, 해가 지고 주위가 어둑어둑 가라앉습니다.
 
램프에 불을 붙인 오드가 길거리를 환하게 밝히는 동안 풀벌레 소리가 잔잔하게 깔립니다.
 
오드는 한 손으로 램프를, 다른 손으로 당신의 짐을 나누어 들고 조잘조잘 이야기하며 앞장서 제 집으로 향합니다.
 
꽤 오래 걸은 것 같은데도 아직 더 걸어야 하나 봅니다. 이 마을은 알려진 것보다는 규모가 있군요.
 
저 건너편에서 큰 체구의 남자 한 명이 다가옵니다. 길을 가던 마을 주민일 뿐인지, 그는 당신과 오드와 눈을 마주치고도 별다른 행위 없이 옆을 슥 지나칩니다.
 
……그랬다가 문득 당신을 한 번 돌아보고, 다시 고개를 돌리고 마저 걷는군요. 이상할 것 없는 평범한 행동이긴 합니다만은,
 
레이시, <지능> 판정.
 
레이시:
지능
기준치: 55/27/11
굴림: 17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생각해보니 아까 해가 뜬 동안에는 오드를 제외한 그 누구도 밖에 나와 있지 않았었군요.
 
규모가 아주 작지는 않은 마을인데 사람이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니, 조금 기묘하네요.
 
오드:다 왔어요! 잠시만요, 제가 아무런 정리도 해놓지 않아서 집안이 조금 너저분할지도 몰라요. (집 앞에 다 와서야 부산스러워졌다.) 아, 음, 그래도 손님을 밖에 세워 두는 것도 예의가 아니니까… 우선은 들어오세요.
너무 유심하게 보시면 안 돼요? (덧붙인 뒤에야 문을 연다.)
 
문을 열고 먼저 집안에 들어선 오드가 당신의 짐을 내립니다. 테이블 위 양초와 방 중앙의 화로에 붙이자 내부가 환하게 밝아집니다.
 
당신이 내부로 들어온 것을 확인한 오드는 문을 걸어잠근 후 늦은 저녁을 준비하겠다며 저 구석의 주방으로 향합니다.
 
그러고 보니 마차에서 내린 후로 아무것도 못 먹었군요.
 
조촐한 식사나마 금방 준비해드릴 테니 방 안이라도 둘러보며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이야기하는 오드의 얼굴에 환한 웃음이 번집니다.
 
레이시:(당신은 잦게 웃었고, 그 표정은 레이시로 하여금 잠시 정신이나 집중력을 앗아가게 만들곤 했다. 자석처럼 이끌리는 시선을 제어할 수 없는 것이 스스로 생각하기에, 참 낯설다고 여겨졌다.) ……도와드릴 것은 없습니까? (그런 말을 내뱉으며, 시선은 방 안을 훑었다.)
 
오드:아녜요. 손님께 일을 시킬 수는 없죠. 앉아서 쉬고 계세요! 잠깐 둘러보셔도 괜찮구요. (어느새 부엌 앞에 서서 무언가 요리를 시작하며 대꾸한다.)
 
오드의 집.
 
조촐하고 작은 집으로 따로 방의 구분이 없는 원룸입니다. 방의 중앙에 화로가 있고, 끝 구석에는 작은 침대가 있고, 의자 두 개와 나무 테이블 그리고 반대쪽 끝에 작은 주방이 딸려 있습니다.
 
고립된 시골에 사는 독신의 여자, 에게 딱 적당한 정도군요. 둘이 있자니 조금 비좁은 느낌도 없잖아 있긴 하나 제법 아늑한 것이 썩 나쁘지 않아요. 창문이 난 벽면 옆으로 촛불 그림자가 어룽집니다.
 
레이시:(화로를 살펴본다. 탄 내가 코끝을 스쳤다.)
 
별달리 특별한 점은 보이지 않는 평범한 화로입니다. 오드가 냄비와 주전자를 올려두고 스튜와 차를 끓이고 있습니다. 화로의 옆에는 부지깽이가 하나 놓여 있군요.
 
레이시:(정말 도와줄 것은 없나? 그 부분을 살짝 살펴보다가, 부지깽이를 들어 화로 안을 뒤적여본다.)
 
반짝이는 금속으로 만들어진 부지깽이입니다─무슨 금속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통상적인 부지깽이가 속이 차 있어 묵직한 것과는 다르게, 이건 속이 텅 빈 금속 관처럼 보이는군요.
 
무슨 용도로 만들어진 관인지는 몰라도 솜씨 좋은 기술자도 만들기 어려울 법한 물건입니다.
 
레이시:(평범해 보이진 않는데. 이런 쪽에는 조예가 없으니 말이다. 금방 관심을 떼고 나무 테이블을 살펴보았다.)
 
촛대와 화병, 질박한 그릇 몇 개가 나무로 만들어진 테이블 위에 올라와 있습니다. 식탁을 비롯한 여러 용도로 사용되는 것 같군요.
 
레이시:(촛대를 본다.)
 
제법 섬세하게 마감된 근사한 촛대의 위에서 촛불이 활활 타올라 방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 방에 있는 물건들 중에서 가장 값비싼 것으로 보입니다.
 
<지능> 판정.
 
레이시:
지능
기준치: 55/27/11
굴림: 42
판정결과: 보통 성공
 
신기하네요, 이토록 작은 집에 혼자 사는 여자가 어디에서 이런 걸 구했을까요?
 
레이시:…….
(창문 너머를 본다.)
 
호수를 향해 뚫려 있는 창 너머, 잔잔하고 고요한 검은 물이 보입니다.
 
호수와 어느 정도 거리가 있을 텐데도 신기할 정도로 시야가 또렷하고 깨끗하네요. 창밖을 떠다니는 반딧불이가 미미한 빛을 냅니다.
 
테이블에 식기를 차리며, 창문을 들여다보는 당신에게 오드가 말을 겁니다.
 
오드:참 예쁜 호수지요? (당신의 시선을 따라 창 너머를 내다 보았다가, 다시금 웃는다.) 마을 사람들도 자주 산책하는 곳이랍니다. 요즘은 발을 들이는 사람이 줄었지만요.
 
레이시:(…뒤늦게 식기를 차리는 것을 도와준다.) 그러고보면, 마을에 사람들이 별로 없더군요. 호수에 발을 들이는 사람이 줄었다는 것과 관련하여, 마을에 특별히 어떤 일이 발생한 적이 있습니까? (사무적인 어투다.)
 
오드:음, 특별히 그런 건 아니지만… (당신이 식탁 차리는 것을 돕자, 앗! 하는 시선으로 바라보다가 냉큼 그릇을 빼앗아 간다.) 호수를 보고 있으면 이상하게도 빠져 죽고 싶은 생각이 든다던가… 그런 사람들이 많아졌대요. 그래서 다들 조심하자는 마음으로 발걸음을 줄였다나봐요. (말을 마치더니 당신의 등을 떠밀어 테이블 멀리로 보낸다.) 아직 준비 안 끝났으니 다른 곳에 가 계세요. 자꾸 손님이 일하려고 하지 마시구요!
 
레이시:(그릇을 빼앗겼다. ……그 당돌한 움직임에 그가 순간 굳고, 얼떨떨한 시선을 당신에게 보내지만. 아무래도 그는 여자가 적은 곳에서 자주 일해왔기 때문에 등을 떠미는 행동에 크게 반항할 수 없었다. 아까는 그렇게 덥썩 팔을 잡아채더니.) ……빠져 죽고 싶은 생각 말입니까? (멋쩍게 어정쩡한 공간 위로 서 있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이었다. 호수의 표면을 바라보던 그는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지금까지 서로, 이름도 모르고 있던 것을 지금 눈치채서. ……저는 레이시입니다. 레이시, 타사르.
 
오드:아, 그러게요. 성함도 묻질 않았네요… (그릇을 마저 내려놓다 찬찬히 고개를 들었다. 저 혼자서 당신의 이름을 몇 번 곱씹어 보다가 살며시 웃는다.) 저는 오드라고 불러주세요. 성은 없구요. 그냥 이름 두 자면 충분해요.
 
레이시:(창문 너머로 계속 시선을 주었다. 자그맣게 읊는다. 오드. 이상한 이름이다. 어딘가 기묘하기도 한 것 같았고. ……누가 지어주었을까, 성이 없으니 추측하기 어려웠다.) ……그대도 그런 생각을 한 적 있습니까? (딱딱한 물음을 건넨다.)
 
오드:……아뇨? (뱉어진 음성이 가볍다. 작은 흥얼거림과 함께 대꾸한다.) 제가 왜 그런 생각을 하겠어요. 저런 호수 따위에 홀리고 마는… 그런 바보같은 짓은 안 해요.
살아야죠, 살아서 즐거워야지… 죽기는 왜 죽나요.
(이내 뒤돌아서 요리를 이어간다.)
 
레이시:(산다는 행위는 누군가에겐 그렇게나 버거운 것이기도 한단 것을 레이시는 무척이나 잘 알았다. 그만 해도 어릴 적, 갓난애인 여동생과 함께…. ……떠다니는 반딧불이 빛의 궤적을 바라보았다.) 이 마을엔 어쩌다 오게 되었습니까?
 
오드:…… (스튜를 휘적이던 팔이 잠깐 멈추었다. 뒷모습만으로는 여자의 표정을 읽어낼 수 없었으나.) 여기저기 떠돌다가… 발걸음이 닿았네요. 평생 머물 곳이라곤 생각 안 하지만. (슬쩍 당신을 바라본다. 눈매 휘어 웃었다.) 오길 잘 했다고 생각해요. 마음에 드는 곳이거든요.
 
창문 너머를 바라보던 당신은 문득 창틀에 올려진 책 한 권을 발견합니다.
 
오드는 다시 등을 돌렸군요.
 
레이시:예를 들면, 호수가? (등을 돌린 오드의 모습이 창문에 반사되어 보였을까. 그는 무심코 손을 뻗어 책을 쥐어 살펴보았다.)
 
오드:음, 뭐. 예를 들면 그렇죠? (웅얼웅얼 대꾸한다.)
 
얼기설기 어설프게 제본된 낡고 작은 책입니다. 창틀에 덩그러니 올려져 있습니다.
 
표지도 다 낡았고 제목도 따로 붙지 않은 것이…… 이게 뭘까요? 평범한 책은 아닌 것 같습니다.
 
레이시:……. (책장을 넘겨 내용을 살펴본다.)
 
누군가 휘갈겨 적은 듯, 군데군데 잉크가 번져 있는 책은 낯선 언어로 적혀 있습니다.
 
기억을 되새겨 보면… '고대어' 라고 하던가요. 옛 신을 섬기는 사제들이 사용했던 언어로 알려져 있습니다.
 
당신도 기사단에서 배운 적은 있습니다만… 꽤 어려운 문장들이 많습니다. 내용을 해독하려면 적어도 삼일 밤을 투자해야 할 것 같군요.
 
레이시:……이런 책은 어디에서 났습니까? (솔직히 말해 의심이 생겨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었겠다. 그러니 책을 들어 오드에게 보여주며 그 출처를 묻는다는 것 자체가, 그로서도 이해가지 않는 행동이긴 했다.)
 
오드:네? 무슨… (오드는 당신의 물음에 천천히 뒤를 돌아보더니, 이내 당신 손에 들린 책을 발견하고는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테이블을 밀쳐내며 황급히 다가와 낡은 책을 빼앗아 든다. 우악스런 손길이었다.) 아냐! 건드리지 마! (무엇이 아니라는 것인지. 빼앗은 책을 제 등 뒤로 감추고는 주춤거리며 물러선다. 그녀는 불안한 눈동자로 당신을 바라보았다. 아까까지 살갑던 낯이 전부 거짓인 양, 온몸에 털을 빳빳히 세운 고양이처럼 건드리면 할퀼 듯한 시선이다.) ……이건, 그러니까… 제… 어머니가 남기신 물건이라서. 죄송해요. …안 보셨으면 좋겠어요.
 
레이시:(예상치 못한 반응에 당황하는 것은 그 또한 마찬가지였다. 예를 들면 순하게 보이던 고양이를 쓰다듬으려 손을 뻗은 순간, 받아줄 것처럼 굴던 고양이가 사납게 발톱을 세워 손등에 상처를 남겨버린 기분이었달까. 우악스럽게 빼앗긴 책을 한 번, 그리고 예민하게 날 서린 당신의 눈을 한 번 바라본다. 멈추어있던 숨을 느리게 터트렸다.) ……고대어로 적혀있었기에, 신기함에 여쭤보았습니다만. 실례에 죄송하단 말씀 드립니다. (머리가 조금은 지끈거리는 기분.) 혹. ……어머니께서, 사제셨습니까? (그럼에도 그는 어딘가, 계속 꿋꿋한 면을 고집하고 있었다.)
 
오드:……제가 아주 어릴 적에 돌아가셔서… 저는, 잘 몰라요. 얼굴도 잘 기억나지 않는걸요… (한참 그렇게 굳어 있다가 휙 돌아선다. 요란한 걸음으로 한쪽 서랍장에 다가서더니 깊숙한 곳에 던져 놓고는 자물쇠로 단단히 잠갔다. 고개 푹 숙인 채로 중얼거렸다.) 전 그냥 평범한 계집이어요. 고대어니 뭐니, 그런 걸 어떻게 알겠어요? (목소리를 잔뜩 낮춘 채 몇 번이고 마력이 담긴 주문을 왼다. 저 스스로도 열기 힘들 만큼 단단하게 잠금을 걸었다. 그런 뒤에야 조금 안심이 되었는지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
(여자는 뒤늦게 당신의 눈치를 살피는지 조심스러운 시선으로 네 얼굴을 바라보았다.) 저는… 거기 적힌 말이 고대어라는 것도 저는 오늘 처음 들어요. 기사님께서는 배우신 분이니 단숨에 알아보실지도 모르겠지만… (허울 좋은 변명을 늘어놓다가.) …혹 불쾌하셨어요? (네게 미움받을 일을 지레 걱정하는지 조금 울상이 되었다.)
 
레이시:(자물쇠가 잠기는 소리가 났다. 그는 당연히 당신이 중얼거리는 어떤 언어가 '주문'이라는 것을 알 수 없었지만 그 모습이 유독 신경질적이고 어쩌면, 방어적인 모습이라는 건 충분히 알아차릴 수 있었다. 곧 마주치는 눈을, 그는 피하지 않았다.) 그렇습니까. ……다시 한 번 사죄드리죠. 저 또한 고대어를 잘 아는 편은 아니라 내용은 확인하지 못했으니, 그나마 그대의 마음이 편해지면 좋겠습니다. (그는 상처받지 않는 남자였고, 불편한 분위기에 휩쓸리는 자 또한 아니었다.) 누구에게나 민감한 부분은 있죠. 이해합니다. 제가 잘못 건드린 듯 했고요. 그러니 지금에라도……. (진중한 눈빛이 향한다. 무슨 말을 하려고?) 저를 내쫓으시겠다면, 묵묵히 받아들이겠습니다.
 
오드:아뇨, 아니에요, 그런 말씀 마세요. 저는 혹시라도, 기사님께서 제 무례함 때문에 제가 싫어지신 건 아닌지 걱정이 되어…… (속마음을 감추는 바 없이 표현하며 마주선 낯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둥근 눈동자에 한가득 당신이 담겼다.) 편히… 머물러 주세요. 네? 벌써 시간이 늦었는걸요…
 
…다 좋은데 말이에요. 어디선가 타는 냄새가 나지 않나요?
 
오드는 뒤늦게 끓어 오르는 냄비를 발견했는지, 아차 싶은 얼굴로 후다닥 달려가 불을 끕니다.
 
레이시:……?!
 
바닥이 조금 늘어붙었을 지도 모르겠어요. 아무튼 우여곡절 끝에 식사 준비가 끝난 모양입니다.
 
오드:(어떡해. 잠깐 울상이 되었으나 당신 돌아보는 순간에는 티내지 않고 웃었다.) 저어… 많이 시장하시죠? 얼른 드세요. 맛은…… 음… 괜찮을… 거예요. (약간 자신 없는 투. 당신의 팔을 붙잡아 식탁으로 이끈다.) 어서요! 식기 전에요.
 
레이시:(결국 앞선 말에 대답할 차례도 오지 않고, 그는 식탁으로 이끄는 힘을 거절할 수도 없어 얼렁뚱땅 자리에 앉고 말았다.) ……잘, 먹는 편입니다. 걱정은 않으셔도 되는데. (얼떨떨하게 식기를 들다 당신을 본다.) 같이 드시는 것이 맞습니까? 자리에 앉으시죠. …오드.
 
오드:앗, 네에. 그럴게요. (당신의 말에 발그레 달아오른 뺨을 하고선 자리에 앉았다. 약간 타버린 스튜와 빵, 소세지, 따듯하게 데워진 우유… 소담히 차려진 식탁이었다.) 맛있게 드세요. (그리 말하면서 당신을 흘끔 바라보고는 도로 고개를 푹 숙인다. 머리카락 틈으로 드러난 귓가가 온통 붉다.)
(아까의 소란을 전부 잊은 사람처럼,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수줍은 태도였다.)
 
레이시:(누가 보아도 제게 관심이 있거나, 뭐, 이미 진한 사랑에 빠진 모습이었는데. 그걸 이 돌같은 남자. 레이시 타사르만이 모르고 있었다. 차려진 음식을 내려다보다 포크로 소세지를 쿡 찔러 입에 넣는 것을 시작으로 그가 조용히 식사를 시작했다.) 치우는 것은 제가 하겠습니다. ……그도 아니라면, 어쨌거나 도와드릴 부분이 있었으면 하는데요.
(이상하고, 기이한 여자. 그럼에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오드:정말 괜찮은데… 정 그러시면 그릇이라도 씻어 주세요. 참, 혹시 좋아하는 음식이 있으세요? 내일은 원하시는 걸 만들어 볼까 하는데, (식사를 하면서도 재잘거리는 음성이 끊이질 않았다. 당신과 시선이 마주치면 자꾸 웃는다.) …… 이번에는 정말 맛있게 해 드릴게요. …
 
식사를 마치고 나면 벌써 주위가 어둑합니다.
 
그릇을 씻어 달라는 부탁은 까맣게 잊었는지, 오드는 다시 고집을 부리면서 정리도 제가 다 하겠다며 당신과 의미없는 실랑이를 하다가… 아무튼 이제서야 식탁이 깨끗해졌군요.
 
손에 남은 물기를 탁탁 털어낸 오드가 서둘러 제 침대를 정리합니다.
 
오드:실은, 손님방 침대가… 며칠 전에 망가졌지 뭐예요. 그치만 손님을 의자에서 재울 순 없는걸요. 여기서 주무세요. (그리 말하면서 자신의 침대를 팡팡 두들겨 보였다.) 제 침대가 작긴 해도 그리 불편하진 않을 거예요. 저는 의자에서 잘게요. 의자에 앉았다가 까무룩 잠들어버렸던 적이 많아 전혀 불편하지 않답니다.
 
레이시:(그리고 이번만큼의 이야기는, 그가 절대로 들어줄 수 없는 류에 속했다. 그가 손바닥을 당신에게 보이며 조금은 골이 아픈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러니까. ……저는 굳이 침대에서 자지 않아도 됩니다. 애초에, 집 주인을 그렇게 내쫓을 정도로 자게 되면 제 마음이 불편해질 정도고. (그리고 그는 내내, 어쩌면 계속 그를 신경쓰이게 만들던 것에 대해 물어보기로 했다. 미간이 살짝 좁아들다 만다.) 오드. ……그렇게 헌신적으로 제 편의를 보지 않아도 됩니다.
 
오드:(오드는 내내 방실방실 웃고 있다가 당신의 마지막 말에 세상이 무너진듯한 얼굴을 했다.) … 싫으세요…? …… (순식간에 눈물이 그렁하다.)
 
레이시:…………………. (그리고 그는 다시 골이 아픈 표정을 지었다.) 예. 안됩니다. (또 그는, 사람의 마음이란 게 없는 모양이었다.) 침대에서 주무시도록 하세요.
 
오드:……… (울상이 짙어졌다. 이런 건 계획에 없었을 뿐더러, 당신을 의자에서 재운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럼, 그러면…. (네 소매를 꼬옥 붙들었다.) 같이 자요.
 
레이시:(붙들린다. 그는 결국 눈을 감고 말았다. 지금, 자신이 들은 게. ……같이 자자는 말이 맞았나? 머리가 지끈거렸다. 지끈!) 안 됩니다. (그는 또다시 재미 없는 말만을 읊었다.) 저는 바닥에서 자도록 하겠습니다. 그대는 방 안에서, 문을 꼭 걸어잠근 다음에, 침대에서. 잠자도록 하지요.
 
오드:(힝… 시무룩한 얼굴을 하고선 입술을 삐죽였다.) …너무하신 거 아녜요? 제가 기사님을 덮친다고 한 것도 아니구, 뭘 그렇게까지 해요. 진짜 잠만 잘 건데…
…제 침대 넓거든요? (아직 미련을 버리지 못했는지 꿋꿋하게 덧붙인다.)
 
레이시:……뭐, (잠깐. 자신이 지금 무슨 소리를 들었지? 덮, 덮, ……덮친다고? 누굴? 이번만큼은 눈치라곤 쥐뿔도 없던 레이시조차, 얼굴을 당황스러움이나 민망함으로 새빨갛게 물들일 수밖에 없었다.) ……뭐라 하셨습니까? 지금, 그게, …쉽게 나올 수 있는 단어가. (따라서 그는 자연스럽게 당신을 덮,치…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할 따름이었다. 그러니 자신에게서 당신을 보호해야 했으니 뒷걸음질을 쳐야 했던 것이고. 연거푸 마른 세수를 잇다가 손을 힘껏 내저었다.) 안 됩니다. 안 됩니다. …안 됩니다. 따로 자는 것으로 하죠. 저는 바닥에서, 그대는 본인의 방에서, 문을 걸어 잠그고. 얘기는 마친 것으로 알겠습니다. 좋은 밤 되십시오. (하고, 그는 자리를 나섰다. ……나서려 하다가, 결국 그곳이 그곳인 것을 깨닫고 우뚝 멈추어 섰다. 멍청하긴!)
 
오드:…어디 가세요? (우뚝 멈춰 선 뒷모습에 대고 말을 건다.) 저희 집, 어차피 방도 하나뿐인데… (침대에 걸터앉아있던 오드가 살그머니 몸을 일으킨다. 당신 가까이로 다가가 등을 톡톡 두드렸다.) 방금 생각난건데, 이불도 하나뿐이에요. 빨래가 다 안 말라서… 아무리 여름이라지만 맨 바닥에서 주무시면 감기 걸려요.
저는 어차피 늦게 자는걸요. 그냥 침대에서 주무세요, 네에? 정 불편하시면 저는 기사님이 잠드시고 나서 누울게요. 그러면 괜찮지요? 응? (헤실 웃는 얼굴로 당신을 재촉한다. 당신의 붉어진 낯을 보니 괜히 놀려주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끝까지 고집을 부려 보았다. 이래도 안 통한다면… 주문이라도 걸어서 재워 버려야지.)
 
레이시:(톡톡 두드리는 손길에, 그는 어쩌면 절망하는 모습과 비슷하게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짙은 한숨이 흐른다. 그래. 방이. ……하나였지. 그랬지. 참. 그는 그 사이 초췌해진 얼굴로 당신을 돌아보며 또다시 한숨을 흘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지. 어쩌다 자신이 이런 지경에 오게 된 걸까, 거기까진 굳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타협해보도록 하죠. (손가락을 두 개 펼쳐 당신의 앞에 들이밀어 보이기를.) 첫 번째, 그대가 침대에서 자고, 나는 바닥에서 그냥. 평범하게 자겠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그래도 당신을 바닥이나 의자에서 재울 수는 없습니다. 당신은 침대에서 자고, 저는, (저는? 같이 침대에서 자겠단 소리일까?) …바깥에서 다른 거처를 구해보도록 하죠. 욕을 듣는 한이 있어도. (세상에나.)
 
오드:(다시금 입술을 삐죽였지만, 타협할 시점임을 눈치채고는.) 알았어요. 그러면 바닥에서… 주무셔요. 이불을 깔아 드릴게요. (이불 없다면서?)
하여튼 고지식하시긴. …기사님들은 다 그런가요? (한숨 한 번 폭 쉬고는 장롱에서 도톰한 이불을 한아름 꺼내온다.) 자아. 이러면 되겠죠? 이 밤중에 돌아다닐 생각은 하지 마시구요! 아무리 그래도 위험하잖아요.
 
레이시:…………. (이불. 없다고 했으면서. 하지만 지적하진 않고, 이불을 받아들였다.) 누가 누굴 걱정하는 겁니까? (무뚝뚝하게 그런 말을 흘리며 마지막으로 한숨을 삼켰다.) 원래 기사들은 정절과 예를 지켜야 합니다. 거기다 저는 그런 기사들의, 단장이고요. 애초에 마을의 여성 분과 이렇게 한 공간에서 자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중얼중얼, 어쩌고 저쩌고.)
 
오드:참나. 누가 건드리겠대요? 딱 손만 잡고 자자니까. (어쩐지 새초롬한 태도로 대꾸했다. 당신이 이불을 받아드는 모습을 보다가 흔들의자로 다가가 몸을 눕혔다.) 달도 저물겠어요. 얼른 주무셔요.
 
레이시:……제발, 그대. (지끈거림을 무시하며 바닥에 이불을 깔기 시작했다. 아까의 한숨이 마지막이 될 줄 알았는데, 아닌 모양이었다.) 그래, 어서 자지. 그러니까 의자 말고. ……침대로 가서 누워. (눈짓했다.)
 
오드:아직 안 잘거라구요. (읽다 만 소설책 한 권을 꺼내들더니 당신에게 보란듯이 책을 펼쳤다.)
 
화로에서 전해지는 홧홧한 온기, 창문 밖의 풀벌레 우는 소리와 고즈넉하고 깨끗한 시골의 맑은 공기.
 
여느 전원 생활을 그리는 소설에나 나올 법한 낭만적인 분위기에 잠이 쏟아집니다.
 
참 말 안듣는 사람 한 명이 곁에서 똘망똘망 눈을 뜨고 있었지만, 어쩐지 오늘은 좋은 꿈을 꿀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웃음기 섞인 오드의 목소리가 당신의 귓가에 내려앉습니다.
 
오드:잘 자요, 레이시. ……
 
레이시, <듣기> 판정.
 
레이시:
듣기
기준치: 60/30/12
굴림: 73
판정결과: 실패
 
장작이 타며 달그락대는 소리를 마지막으로 까무룩 정신이 멀어집니다.
 
<정신력> 판정.
 
레이시:
정신
기준치: 75/37/15
굴림: 31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척추를 타고 기어오르는 하염없는 따스함과 허무함, 전신에 퍼지는 안온함과 동시에 미칠 것 같은 불안감. 따뜻한 물에 잠겨 의식을 잃고 부유하는 안정감…….
 
당신은 이유 모를 부유감과 함께 잠에서 깨어납니다.
 
어쩐지 소름 끼치는 기이한 느낌이 전신을 나른하게 내리누릅니다.
 
변함없이 깨끗한 시골 공기와 그칠 줄 모르는 풀벌레 소리에 이유 모를 공허함이 느껴지던 찰나,
 
오드:어머, 레이시, 깼어요?
 
의자에 앉아서 책을 읽고 있던 오드가 당신을 보고 서둘러 몸을 일으킵니다.
 
오드:더 주무세요. 아직 날이 밝기까지는 한참 남았답니다. 아니면 자장가라도 불러드릴까요?
 
시답잖은 이야기를 하며 오드는 따뜻한 차가 담긴 컵을 당신에게 건네줍니다.
 
<관찰> 판정.
 
레이시:
관찰력
기준치: 75/37/15
굴림: 59
판정결과: 보통 성공
(느껴지던 불안감이나 중압감은 모조리 착각이었나. 그럴 리 없을 텐데. 그는 와닿는 감각들을 꽤나 신뢰하는 편이기에, 우선은 차가 담긴 컵을 받았으나. 예리한 눈빛으로 상대방을 훑는 행동을 구태여 막지는 않았다.)
 
그런 오드의 행위에는 그 어떠한 위화감도 없습니다. 마치 당신이 깨어날 것을 진작에 알고 있던 사람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질문 따위를 던지기에는 정신이 너무나도 아득합니다. 귓가에 천사의 피리 소리가 들려옵니다. 잦아드는 풀벌레 소리,
 
온몸이 수면 아래로 침잠하는 느낌과 함께 세상에 적막이 찾아옵니다. 정신이 까무룩 멀어집니다.
 
2일차, 오전.
 
종달새 지저귀는 소리, 그리고 맑은 풀벌레 소리가 들려오는 기분 좋은 아침입니다.
 
당신은 제법 개운한 느낌과 함께 잠에서 깨어납니다.
 
<정신력> 판정.
 
레이시:
정신
기준치: 75/37/15
굴림: 22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부옇고 흐릿한 기억 사이 이질적인 구간이 있습니다. 당신, 어젯밤에 잠에서 깼던가요? 하지만 잘 기억이 나지 않네요.
 
오드:일어나셨어요? (한껏 들뜬 음성으로.)
 
오드는 벌써 일어나서 화로에 냄비를 걸고 무언가를 끓이고 있습니다.
 
햇빛이 쨍하게 들어오는 집안에 고소한 냄새가 퍼지고 새 지저귀는 소리가 귀에 맴돕니다.
 
레이시:……. (마른 손으로 얼굴을 한 차례 쓸어내린 그는 어쩌면 익숙한 모습으로, 당신의 옆에 가서 섰다. 보통의 남자들관 달리 요리에 거부감이 없는 모습처럼 말이다.) 도와줄 것은? 아니지. 그 전에. ……잘 주무셨습니까? (아직 다 잠에서 깨어난 것 같진 않아도 말이다. 그의 눈 안쪽으로 무심코 당신의 머리카락 사이를 헤쳐 드러난 하얀 귀나, 목덜미가 보인다. 그리로 눈빛이 길게, 머물렀다.) 새벽에도 깨 있던 것 같은데, 그대…….
 
오드:책이 재미있어서 조금 늦게 잤거든요. (곁으로 다가오면 한 걸음을 옆으로 옮겨 당신에게 자리를 내 주었다. 냄비 속을 유심히 바라보며 요리에 집중하다가 문득 고개를 돌려 당신을 빤히 응시했다.) 레이시도 잘 잤어요? …저희 이러고 있으니까, 무슨 신혼 부부 같네요! (아무렇지도 않게 헤실 웃는 얼굴. 농담처럼 뱉어내는 희망.) 히히. 그쵸?
 
레이시:늦은 밤에, 등불도 제대로 키지 않고. ……계속 그렇게 하시면 눈 건강이 나빠지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에. 이 남자는 아침부터 정석적인 소리로 똘똘 뭉친 잔소리를 읊고 있었다. 하지만 함께 냄비 속을 바라보다 눈이 마주치면, 또 이어지는 소리를 듣게 되면. ……뭐? 부부? 이해하지 못해 그의 얼굴이 한순간 일그러졌다가, 곧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그러기 전고개를 반대편으로 확 돌려버렸지만, 미묘하게 붉어진 귀 끝은 감출 수 없었겠다.) ……어젯밤에도 비슷한 소리를 한 것 같지만, 그대. 그런. …말은, 대체로 주의해야 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찌푸려지다 만 얼굴, 그리고 그는 다소 급하게 제 말을 잇는다.) 해서, 도와드릴 것은 없습니까? (화제를 바꾼다.)
 
오드:아침부터 잔소리나 하시구…… (잠깐 입술을 삐죽이긴 했지만 당신의 붉어진 귀 끝이 만족스러워 입꼬리를 당긴다.) 왜요~? 왜 주의를 해야 하지? 나는 잘 모르겠는데~… (능청스러운 대꾸와 함께 콧노래를 흥얼이며 냄비 안을 휘적인다. 화제를 바꾸려는 당신의 말에 맞추어 선반의 그릇 몇 개를 꺼내었다.) 손님은 일하지 마시라니까요. 정 그러시면, 식탁에 그릇 좀 놓아 주실래요? 아침 다 됐어요.
 
레이시:(……저, 저. 얄미운 음성. 저런 면은 여동생의 모습과 비슷한 듯도 해, 그는 나지막한 한숨을 흘렸다.) 잠은 제대로 주무셨습니까? '조금' 늦게 주무셨다 하니…… 걱정이 되는데. (평상시 그가 말하는 걱정은 상투적인 물음에 가까웠으나 이번에는, 글쎄. 사심이 얼추 섞인 것 같기도 했다. 묵묵히 그릇을 들어 식탁에 셋팅한다. 투박한 손길이다.)
 
오드:걱정도 참 많으세요. (당신의 반응이 재미있었는지 키득거리면서 그리 대꾸했다. 제대로 된 대답은 은근슬쩍 피하고는 냄비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뒤 그릇에 음식을 나누어 담았다. 식탁이 차려지면 두 손을 모으고 낭랑한 목소리로 외친다.) 잘 먹겠습니다~! 레이시도 맛있게 드세요.
참, 아침 식사 마치면 마을에 나가실 테지요? 저희 마을, 길이 꽤 복잡한데… 길 안내 필요하지 않으세요?
 
레이시:(낭랑한 음성이 들려왔다. 솔직히 말해 이런 마을에서 여자 혼자 살기엔 힘든 경우가 많을 텐데. 레이시는 입술을 다문 채 식기를 들었다. 그대도. 그런 답이 속으로나 나왔다.)
길이 복잡한 편입니까? ……꼭, '길이 복잡하니 안내해주겠다'는 소리처럼 들리는데. (찰나에 미미한 웃음이 스쳤다. 착각일까?) 맞습니까?
 
오드:앗, 정답이에요. 눈치 빠르시네요. (한쪽 눈을 찡긋하며 뻔뻔스레 대꾸한다. 그러다 당신의 옅은 미소에 눈동자가 휘둥그래졌다.) ……어? 어라? 지금 웃었죠! 웃으신 거 맞죠?
뭐야, 뭐예요? 평소에는 왜 그러고 다녀요! (화를 내는 건지 좋아하는 건지. 어느새 얼굴이 제 머리카락을 닮은 빛으로 온통 물들어 있다. 흥분에 겨워 식탁을 좀 내리친다.) 얼굴 아깝게!
 
레이시:(휘둥그레진 눈, 좋아하는 건지 화내는 건지 구분하기 힘든-붉어진 뺨. 식탁을 내리치는 모습에는 저도 모르게 어깨를 움찔거릴 뻔 했지만 말이다.) ……'왜 그러고 다니냐'는 물음이 무슨 소리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더불어 얼굴이 아깝다는 소리 또한. 미묘하게 시선을 피했다.) 안내해주실 겁니까? ……원래 하던 일이나, 일정에 차질이 생기는 것은 아니신지요.
 
오드:흠흠. (뒤늦게 체면을 관리하려는지 목을 가다듬었다. 쫌 진정한 듯.) 걱정 마세요. 시간 많으니까요. 저희 마을이 꽤 넓어서 한 번에 모두 살피기에는 벅찰 거에요. 한 세 군데 정도라면 볼 수 있겠네요. 해가 지기 전에 돌아와야하니 부지런히 돌아다녀야겠어요! 얼른 드셔요. (그리 말하면서 빵 하나를 제 입 안으로 쏙 던져넣는다.)
 
레이시:(입 안으로 들어가는 빵 한 덩어리를 본다. 잘 먹는군. 물론 제 쪽의 그릇은 이미 반절 넘게 내용물이 비었지만 말이다.) 주로 어떤 어떤 공간이 있습니까?
 
오드:음, 그러니까… (입 안에서 우물거리던 빵을 꿀꺽 삼키고는 대답했다.) 청과점이랑, 찻집이랑, 의상점? 교회나 광장도 있구요… 정원도 하나 있어요. (장소를 손가락으로 꼽아 가며.)
(당신의 반쯤 비워진 그릇을 보더니 무언가 경쟁심을 느낀듯 열심히 수저를 움직였다.)
 
레이시:(청과점, 찻집, 의상점, 교회와 광장, 정원. 생각보다 들러야 할 곳이 많다. 조사를 위해서는 사람들도 많이 만나야 할 텐데, 어제의 일을 떠올려보면 경계심이 대체로 큰 듯 하여서. 그는 빵을 한 입에 다 넣고 우물거렸고, 빵을 삼킨 뒤에야 묘하게… 경쟁심 붙은 행동을 목격할 수 있었다. 지금 뭘 하는 거지?) ……천천히 드시죠. 체하실 것 같습니다. (일단 그런 말이나 했다.)
 
오드:… (당신이 빵을 한 입에 삼키는 모습을 보더니 조금 기가 죽었다.) …천천히 먹고 있거든요? (빵을 크게 한 입 베어 물었다. 겨우 반이나 떼어먹고는 어쩐지 부루퉁한 얼굴로 우물거린다.) 뭔가 좀 불공평하다아.
 
레이시:(그리고 그는 이번에야말로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을 지었다. 고개가 자그맣게 기운다.) 불공평? ……무엇이 말입니까?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부루퉁한 얼굴이 유독 눈 안에 박히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해하기 힘든 것들이 늘어난다. 자꾸만.)
 
오드:에휴. 말 해봐야 입만 아프죠. (됐다는 듯이 손을 휘젓고는 그냥 열심히 남은 빵을 삼킨다. 당신의 비어가는 그릇에 스프를 듬뿍 떠서 부어준다.) 배 안 고프세요? 더 드셔요, 더. 이거 많이 남았어요.
 
레이시:(그릇이 다 비었는데, 또다시 가득 찼다. 그는 원래 배고픔이라는 것을 잘 인지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어릴 적 워낙 험하게 자라와서일까. 배고픔이나 상처같은, 몸의 어떤 신호를 알리는 체계가 꽤나 둔한 편이라 그는 지금으로도 만족하고 식기를 내려놓을 수 있었는데. 왜일까. 이상하게 갈증이 났다. 하지만. 대체 무엇 때문에?) ……그대는 참 이상합니다. (무심결에 말했다.)
 
오드:… (어느새 또 기분이 풀어졌는지 도로 가득찬 그릇을 바라보며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당신의 목소리, 무심결에 흐른 음성이 스치면 당신의 낯을 향해 고개를 들어올린다.) 알아요. (머뭇거림 없이 태연스레 대꾸했다. 여자가 붉은 머리칼을 귓가로 쓸어넘긴다. 연두빛 눈동자가 당신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웃었다.) 싫으세요?
 
레이시:(붉은 실타래같은 머리카락이 흔들리고, 햇빛 받은 나뭇잎이 빛을 반짝이듯. 그는 그 정경에 어쩔 도리 없이 홀리고 만다. 탄식어린 숨을 내뱉지 않는 것이 최선이었다. 식기를 쥔 손에 서서히 힘이 들다 겨우 풀리지만, 그러고도 당신을 응시하는 시선을 돌리지는 않았다. 이전과는 다르게 말이다. 정말 이상한 사람이다. 만난 지 채 하루도 되지 않은 여자가, 왜 이렇게, 자신은.) ……. (싫으냐고? 그가 답할 것은 정해져있지 않았나. 고개를 숙여 식사를 이어갔다.) 싫지 않습니다.
 
오드:그렇구나. (생글생글 웃는다. 당신의 그 말이 더없이 기쁜 것 같았다. 몸을 가만 두지 못하고 자꾸만 어깨를 들썩였다. 의자에 앉은 채 다리를 흔들거리다가 우뚝 멈춰 세운다.) 저도 그래요. (오드의 시선은 끈질기다시피 당신을 향한다. 숙여지는 고개가 아쉽다. 눈 떼지 못하도록 붙들어 놓고 싶다는 욕망이 치솟는다. 그러나.)
(괜스레 입맛을 다셨다.) … (창 너머에서 새가 지저귀는 소리 들려온다. 고개를 돌려 창가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오묘한 분위기 속에서 식사를 마칩니다.
 
마을로 향할 시간입니다.
 
오드:어딜 먼저 보실 거예요? (고개를 갸웃 기울이며 묻는다.)
 
레이시:(식기 정리까지 다 함께 거들어 마친 후에.) 광장부터 향해보죠. (주민들을 여럿 만날 수 있다면 좋으련만.)
 
마을의 중앙에 위치한 작은 광장으로, 명색이 광장이지 마을 중심부로서의 기능은 영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지 않습니다.
 
그야 이렇게 날씨가 좋은데도 나와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걸요.
 
광장의 구석에는 여러 갈래로 나뉜 돌길이 있고, 오른쪽으로 쭉 직진하는 길은 호수로 이어집니다.
 
가운데에 위치한 투박한 분수대를 중심으로 나무로 만들어진 벤치 몇 개가 간신히 구색만 맞추며 늘어서 있고, 군데군데 어설프게 조성해둔 화단이 보입니다.
 
레이시:(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주변을 둘러보다 분수대를 눈으로 살폈다.)
 
물이 흐른 자국만 남아 있는 초라한 분수대입니다. 새겨진 조각마저도 선이 영 섬세하지 못하고 서툰 것이, 절대로 고급품은 아닌 듯싶습니다.
 
그나저나 이 마을 사람들은 광장 관리도 않는 걸까요? 호수를 낀 마을의 분수대에 물이 흐르지 않다니 우스꽝스럽지 않습니까.
 
<관찰> 판정.
 
레이시:
관찰력
기준치: 75/37/15
굴림: 53
판정결과: 보통 성공
 
분수대의 바닥에 놓인 은화 몇 닢에 약간의 이끼가 끼어 있습니다. 정말 어지간히도 관리를 안 했군요.
 
<지능> 판정.
 
레이시:
지능
기준치: 55/27/11
굴림: 96
판정결과: 실패
 
은화를 줍는 것은 썩 바람직하지 못한 행위겠죠, 타인의 염원을 방해한 이에게는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대가가 따르기 마련이므로.
 
오드:(당신 곁을 기웃거리다가 분수대에 손을 뻗어 물에 잠긴 은화를 톡톡 건드려 본다.)
요즘은 늘 조용해요.
 
레이시:……. (머지 않아 그 또한 걸음을 옮겨 당신의 옆에 서서, 은화를 하나 주워들어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는 염원과 관련된 미신을 믿지 않았다. 그래, 가령, 믿음같은 것 말이다.) 이유를 짐작하시는 것이 있으십니까?
 
오드:음…… 글쎄요? (말꼬리를 길게 늘이며 은화 위를 손가락으로 덧그리다가 묻어나는 물기를 탁 털었다. 당신 바라보며 의뭉스레 웃는다.) 잘 모르겠네요.
분수대에는 볼 게 없고~ 여기 벤치가 있네요. (말을 피하며 벤치 가까이로 다가간다.)
 
빗물에 축축이 젖어 앉지 못할 목재 의자가 여럿 널려 있습니다.
 
간밤에 비가 왔던가요? 하지만 젖어 있지 않았더라도 의자의 나무가 다 썩어 앉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레이시:(동전을 엄지 손톱 위로 탁 굴려 바닥에 떨어뜨렸다. 앞면인지 뒷면인지는 중요치 않았다. 썩은 목재를 눈에 담다가, 속내를 알 수 없는 얼굴을 마주했다.) 있는 것 같은데. (그러나 더 캐묻지는 않는다. 무슨 생각인 건지.)
(벤치를 더 자세히 살펴본다. 뭔가 특별한 점이 보이나?)
 
앉으면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 같다는 점 외에는 특별한 게 없습니다.
 
레이시:…….
다른 곳으로 가봐야겠습니다. 향해보고 싶은 곳이나, 안내해주고 싶은 곳이 따로 있으십니까?
 
오드:(당신의 질문에 오드는 눈동자를 데구르르 굴렸다.) 마을 주민을 만나보고 싶으신 거죠? …청과점에는 누가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환영해줄지는 잘 모르겠지만.
 
레이시:(미간을 좁히다 말며 청과점으로 걸음을 옮겼다.) 외부인에겐 원래 그렇다 치고, ……같은 마을 주민에게까지 그럽니까?
 
오드:……요즘 다들 이상하거든요. (천진한 낯. 눈을 깜빡인다.)
 
매대 몇 개와 의자 두어 개가 덩그러니 구르는 청과점입니다. 근처에 접근하자마자 과일 썩는 요란한 단내가 코를 자극합니다.
 
안에는…… 아무도 없는 것 같습니다. 적어도 1층에는요. 내부에 2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이 보이는 걸로 봐서는 2층에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레이시:(잠깐 침묵이 흘렀다. 그는 눈으로 매대를 살피지만 사실 제대로 그것을 눈에 담는 것 같진 않았다. 다만 의자 구르는 바닥이며 코끝 아리게 만들 정도의 향기에 지그시 눈을 감았다 뜰 뿐이다. 이상하다고.) ……어떻게 이상합니까? (매대에는 어떤 과일이 올려져 있지?)
 
청과점 내부에는 한층 짙은 단내가 퍼져 있습니다. 다만 특이한 점이라면 내부가 멀쩡히 보존되어 있다는 것일까요? 과일 상자와 카운터 겸용 테이블이 눈에 들어옵니다.
 
보통의 망한 가게들이 스산할 정도로 텅 비어 공허한 것과는 다르게, 이 청과점은 외부뿐만 아니라 내부도 텅 빈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득 쌓여 썩어들어가는 것들로 차 있군요.
 
당신은 매대를 건성으로 바라봅니다. 썩어들어가는 무화과와 복숭아 따위의 과일이 구르고 있ㅔ요.
 
구석 모서리에는 곰팡이가 피어 있고 개미가 바쁘게 기어다니는 것이 보이는군요.
 
그럼에도 아직 과일의 형체가 남아 있는 것을 보면 이 청과점이 버려진 것이 그리 오래 되지는 않은 모양입니다.
 
오드:…'어떻게'라고 물으셔도… 설명하기 힘들어요. (어깨만 으쓱했다.) 제게 화난 것 같이 보이던데요.
 
레이시:(가게의 주인이 떠났군. 그런데도 마을 주민들이 굴러다니는 과일을 가져간 흔적들은 그리 보이지 않았다. ……왜?) ……그대에게? (과일 상자 안을 본다.)
 
오드:이유를 알면 사과라도 했겠죠. (마을 사람들에게 미움받는다는 소리를 늘어 놓은 것 치고는 태연한 낯빛이다. 당신을 따라 과일 상자 가까이로 다가갔다.)
 
냄새의 근원지일 과일 상자입니다. 겹겹이 쌓여 높게 휘청이는 상자에서 끔찍할 정도의 단내와 함께 곰팡이 냄새가 납니다.
 
<행운> 혹은 <민첩> 판정.
 
레이시:
기준치: 80/40/16
굴림: 65
판정결과: 보통 성공
그대는. ……원래부터 이 마을에서 살아온 게 아닙니까?
 
상자 가까이로 다가가는 순간, 레이시의 말을 끊으며 위태롭게 쌓여 있던 상자들이 휘청이며 엎어집니다.
 
레이시:(그것이 아니라면 왜, 당신을. 그는 도통 이해할 수 없단 눈빛을 띄었다.)
 
다행스럽게도 다치지는 않았으나 높이 쌓여 있던 상자들이 천둥 같은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집니다.
 
다 썩은 복숭아와 무화과와 포도와 그것들을 파먹고 있던 지네 개미 파리 등등이 바닥에 뒹굴고, 윗층에서 짜증스러운 고함이 들려옵니다.
 
: 이런 빌어먹을, 거기 누구야!
 
레이시:(오드를 뒤로 물리며 앞을 막아섰다. 한쪽 손은 자연스럽게 검 손잡이를 쥔다.)
 
청과점의 구석진 곳, 낡고 삐걱이는 계단에서 누군가 쿵쾅대며 내려오는 소리가 들립니다.
 
당신 뒤에서 눈치를 보던 오드가 재빠르게 앞으로 나섭니다. 말릴 새도 없이 2층으로 뛰어 올라가네요.
 
오드:레이시, 잠깐만요. 거기서 기다려요.
 
레이시:……? 잠깐, 그대.
(황급하게 뒤따랐다.)
 
오드의 뒷모습이 2층으로 사라집니다.
 
곧장 뒤따랐지만… 분명 가게 주인이 밖으로 나오려던 것 같았는데.
 
오드 혼자 서 있습니다.
 
계단참에는 녹색의 먼지가 약간 떨어져 있습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녹색 먼지입니다. 아니…… 먼지? 먼지보다도 곰팡이에 더 가까운 것 같기도 하고.
 
이게 뭐죠? 굉장히 비위생적이네요. 청과점에 이런 게 있어도 되는 건가요?
 
오드:(당신을 돌아보며 웃는다.) 음… 주인 분이 화가 나신 것 같아서. 제가 잘 얘기했어요.
 
오드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2층 계단 쪽에 달린 문에서 쾅 두드리는 소리가 납니다. 여전히 화가 난 것 같은데요.
 
레이시:(그의 기민한 감이 울리고 있었다. 혹은, 경고하고 있었다. 눈 앞의 여자를 완전히 믿지 말라고. 레이시는 곧장 무어라 말하지 않았지만 의아한, 혹은 불신 어린 시선이 당신의 머리카락 끝을 스치고 만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제가 다시 얘기해보겠습니다. 여쭤봐야 할 점도 있고요.
 
오드:(오드는 당신을 바라보다 한 발 물러섰다.) 네에. 그러세요.
 
레이시:(오드를 지나쳐 계단을 다 올라선다. 문에 노크한다.) 잠시 시간 되십니까. 황궁에서 파견되어 왔습니다만, 협조 부탁드립니다.
 
문은 잠긴 채로 열릴 줄을 모릅니다. 짜증스러운 고함이 울려퍼집니다.
 
: 너도 그 빌어먹을 년과 동행하는 놈이지?
네들에게 말해줄 것 따위 없으니 썩 꺼져!
 
당신의 뒤에 선 오드. 어쩐지 만족스런 표정으로 웃고 있습니다만… 그 미소를 보았나요, 레이시?
 
레이시:……뭐? (빌어먹을 년? 그 소리를 듣자 하니, 왜 눈 앞이 한순간 뒤집어지는 것만 같았던지. 그는 통증 닮은 감정에 눈살을 찌푸리느라 오드의 얼굴을 미처 살필 틈이 존재하지 않았다.)
(쾅! 이번의 노크 소리는 제법 위협적이었다.) 나오시죠.
 
문 너머는 묵묵부답입니다.
 
당신 곁에 서 있던 오드가 살며시 팔을 잡아끕니다.
 
오드:저기… 진짜 안 열어 줄 것 같은데. 그냥 아래에서 가게나 마저 살펴요, 우리.
(방금 욕을 들어먹은 사람 치곤 표정이 밝았다.)
 
레이시:(그는 그 손길보단 당신의 얼굴에서 기시감을 느꼈다. 너무 괜찮아보이지 않나? 마치, 이 무시와 경멸이 익숙한 사람처럼. 그는 한참 알 수 없는 감정을 가라앉히느라 시간을 써야만 했고, 그것들을 갈무리 한 뒤로는 당신의 행동을 더 거절하지 않았다. 계단을 내려온다.)
(아까 미처 살펴보지 못한, 1층의 카운터를 겸용하는 테이블을 보았다.)
 
카운터 겸용으로 쓰였을 작은 테이블에는 낡은 촛대와 펜 따위가 구르고 있습니다. 펼쳐진 장부 하나가 보이네요.
 
레이시:(장부를 본다.)
 
판매 기록과 수입 등이 날짜별로 꼼꼼히 정리되어 있는 장부입니다. 마지막으로 기록되어 있는 날짜는 삼 개월쯤 전이군요.
 
이후로는 어떠한 기록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삼 개월 전에 영업을 중단한 모양입니다.
 
레이시:……나가죠. 특별히 볼 건 없는 듯 합니다. 그리고.
………괜찮습니까?
 
오드:네에~…. 뭐가요? (평소와 다름없이 방긋 웃었다가.)
우리 얼른 나가요. (찌든 단내에 코를 막으며 장난스레 얼굴을 찡그렸다.)
 
레이시:(그는 더 캐물을 수 없었다. 그러니까, 대체 어째서? 답은 알 수 없었다.)
(그는 잠깐 방황하다, 찻집으로 향했다.)
 
당신은 청과점에서 발을 돌렸습니다.
 
<지능> 판정.
 
레이시:
지능
기준치: 55/27/11
굴림: 22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이상한 일입니다. 밑에서 이렇게 과일 썩는 단내가 진동을 하는데, 위층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게 이 집에서 살고 있다고요?
 
어떻게 이 냄새를 참고 사는 걸까요, 불가능한 전제입니다─후각이 마비된 존재가 아니고서야…….
 
 
찻집
 
광장의 구석에 위치한 찻집으로, 채도 낮은 연두색으로 꾸며진 내부가 제법 촌스럽지 않고 세련되었습니다.
 
런던 찻집에서 흔히 유행하던 스타일임을 보아 도시에서 내려온 주인이 열었던 찻집인 모양이에요.
 
문에는 종이 달려 있어 딸랑이는 맑은 소리를 내며 열립니다.
 
찻집 역시 여느 건물들처럼 텅 비어 있습니다. 고상하나 쓸쓸한 분위기가 숨을 턱 막히게 합니다.
 
벽에 걸린 여러 장식 액자들과 테이블, 의자, 카운터 등…… 섬세하게 보존된 내부가 사람이 있었을 과거를 상상케 합니다.
 
레이시:(이 역시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는 테이블 위를 손가락으로 훑어보았고.) 마을의 모든 사람들이, 그대에게 '화'가 난 것 같습니까?
 
오드:…그런 건 왜 물어보세요? (고개 숙인 채 찻잔 하나를 살펴보고 있다. 붉은 머리카락이 얼굴 위로 드리운다.) 말하기 싫어요. 별로 좋은 기억도 아닌걸요.
 
단단하고 고급스러운 목재로 만들어져 아름다운 테이블이지만 지금은 먼지만 뽀얗게 앉아 있습니다.
 
테이블 근처 바닥에 구르는 종이가 한 장 보입니다.
 
레이시:(더 파헤쳐야 함이 옳았는데, 왜 그의 입술은 다물렸나. 그는 묵묵히 종이를 주워들었다. 무어라 적혀있지?)
 
이 종이는 누군가에게 보내졌던 편지처럼 보입니다.
 
섬세한 글씨로 작성되어 있습니다만…… 내용은 그다지 섬세하지 못하군요. 자세히 보니 필체도 제법 다급한 편입니다.
 
레이시:(그 여자. 오드.)
(그는 우선 종이를 품 안으로 집어넣었으나, 가슴 속에서 어떤, 불합리함을 닮은 감정들이 득시글대는 것은 확실했다.)
(카운터를 본다.)
 
먼지가 두텁게 쌓인 카운터입니다. 카운터 위의 선반과 바닥에 구르는 상자 몇 개를 제한다면 별다른 것은 보이지 않습니다.
 
레이시:(선반을 살핀다.)
 
여러 종류의 작은 상자와 찻주전자 등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는 선반입니다. 상자들은 전부 찻잎을 담은 상자들처럼 보입니다.
 
<관찰> 혹은 <자료조사> 판정.
 
레이시:
관찰력
기준치: 75/37/15
굴림: 83
판정결과: 실패
 
제법 깔끔하게 정리된 찻잎 상자들 중 두어 가지의 자리가 텅 비어 있습니다.
 
레이시:(상자를 본다.)
 
바닥을 구르는 상자 속에는 여러 장의 편지 봉투 따위가 꾹꾹 눌러담겨 있습니다.
 
가게 주인이 런던에 있을 그의 연인 혹은 가족 따위의 소중한 사람들과 주고받았을 시답잖은 편지들을 모아둔 상자인 것 같습니다.
 
편지 봉투에는 주로 런던 우체국의 소인이 찍혀 있고, 주기적으로 이어지다가 두 달쯤 전의 소인이 찍힌 편지를 마지막으로 끊깁니다.
 
레이시:(……정말 시덥잖은 편지다. 여자가 남자를 떠난 이유를 알겠군. 편지를 접어 다시 상자 안에 넣어두었다.) 이곳도 볼 것은 없군요. 마을 전체가…… 아마도 2-3개월 전에. 단체로 이상해진 모양입니다. (그렇다면 오드는? 그가 고요한 눈으로 당신을 바라보았다.)
 
오드:그래요? (오드는 여전히 태연스런 태도로 당신 곁을 졸졸 따라다니고 있다. 눈이 마주치면 웃기만 한다.) 아마 그랬던가… 잘 기억은 안 나지만요.
 
레이시:(이상한 여자. 그리고. 의심스러운 사람. 그의 본성은 확실히 당신이 이 마을의 어떤 사태와 깊게 연루되어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다른 마을로 떠날 생각은 해보신 적 없었습니까?
 
오드:물론 했었죠. 지금도 하고 있어요. (당신이 저를 의심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는지. 한 손으로 머리카락을 뱅뱅 꼬아대며 대꾸한다.) 저라고 이런 취급을 받으면서 지내는게 즐거울 리 없잖아요? 사람이라면.
마침 이사라도 갈까 생각하던 참이었어요. (그런데, 당신이 왔지. 아무 말 없이 당신을 올려다본다. 녹색 눈이 웃는다.)
 
레이시:(아마도 그런 생각을 곱씹어 하던 차에 자신이 온 모양이다. 손가락 사이로 꼬이고 풀리기를 반복하는 붉은 머리카락을 본다. 그것은 햇빛 아래 있을 때 제일 빛났다.) ……제가 돌아갈 때, 그렇다면 같이 가시겠습니까? 좋은 마을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오드:(눈동자에 차츰 빛이 들었다. 감출 수 없는 설렘으로 반짝이기 시작한다.) 정말요? (입술이 크게 벌어지며 뺨 위로 홍조가 띄워진다. 커다란 웃음 터트리는 얼굴이 더없이 기뻐 보였다.) 정말, 정말이죠? 꼭 약속하신 거예요. 잊으시면 안 돼요! 절대로요!
 
레이시, <지능> 판정.
 
레이시:
지능
기준치: 55/27/11
굴림: 78
판정결과: 실패
(그리고 그 웃음에, 한순간 정신이 아득해진다.)
……황성으로 올라가는 길에 괜찮은 마을이 하나 있습니다. 외지인도 따뜻하게 받아들이고, 마을 내 분위기도 좋은 곳이죠. 아마 그곳이라면 잘 적응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헛기침.)
 
레이시와 오드, 두 사람 모두 단 꿈에 젖어있군요.
 
그런 당신의 머릿속을 문득 기묘한 사실이 스치고 지납니다.
 
당신이 이 마을을 헤집고 다닐 동안 마을 사람들은 그 누구도 얼굴을 비추지 않았다는 것을.
 
그러나…… 생각은 길게 이어지지 못합니다. 금방 눈 앞의 여자에게 사로잡히고 말죠.
 
2일차, 오후.
 
얼마나 오래 돌아다녔을까요. 하늘 끝자락에 걸려 쨍하게 빛나던 태양은 힘을 잃었고, 피부에 닿는 바람의 온도가 서느렇게 가라앉아 낮아집니다.
 
공기에 습하고 비릿한 호수 냄새가 섞여 당신의 뺨을 간지럽힙니다.
 
슬슬 눈이 시리고 다리가 뻐근하게 저려올 무렵 당신의 옆을 졸졸 따라다니던 오드가 옷자락을 잡아당깁니다.
 
오드:시장하지 않으세요? 일단 저희 집에 돌아가서 간단히 요기라도 한 후 다시 나와 보는 건 어때요? (아까 당신의 말 이후로 오드는 내내 기분이 좋아 보였다. 평소보다도 들뜬 목소리로 종알거린다.) 마침 오늘은 이 근처 마을에서 야시장이 선다고 하던데…….
 
<지능> 판정.
 
레이시:
지능
기준치: 55/27/11
굴림: 92
판정결과: 실패
 
시장해서 그런지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습니다. 어서 오드의 집으로 향하는 편이 낫겠습니다.
 
끼니를 해결하기 위하여 오드의 집을 향해 걸어가던 도중, …문득 뒷골을 선득하게 할퀴고 지나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당신은 이런 느낌을 잘 압니다…… 위화감, 어쩐지 이질적이고 기이하여 쉽사리 무시할 수 없는 인간의 동물적 본능.
 
<지능> 판정.
 
레이시:
지능
기준치: 55/27/11
굴림: 39
판정결과: 보통 성공
 
당신은 위화감의 정체를 쉽게 알아차립니다.
 
이 시간에 저녁 식사를 하는 집이 하나쯤은 있을 법도 한데, 음식 냄새는커녕 지금껏 지나친 그 어떤 가정집의 굴뚝에서도 연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견을 제시하기에는 벌써 오드의 집이 코앞이군요.
 
당신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오드는 환히 웃으며 집의 문을 열 뿐입니다.
 
레이시:……계속 식사 준비를 부탁드리는 게 썩 내키지는 않는군요. 그러고보면 청과점 또한 저런 모양인데… 음식은 어디서 얻어오십니까?
 
오드:옆 마을에서요. 가까이에 있거든요. 옆 마을 사람들은 친철하시구, 다들 좋아요. (헤헤 웃는다.) 저녁에는 뭐 드시고 싶은 것 없으세요? 레이시는 무슨 음식 좋아해요? (말 끝에서 애정이 뚝뚝 묻어나는 것이… 지나치게 친밀한 어조로.)
 
레이시:옆 마을이라…. (그렇게라도 도움을 받을 수 있어서 다행이란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그런 생각들 사이로, 그는 당신의 어투가 지나치게 친근한, 애정 관계를 바탕으로 한 사람에게 말하는 것 같다는 것을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다.) 무엇이든 좋습니다. 그러니 그대가 더 원하는 쪽으로 생각해.
 
오드:그럼요, 야시장에서 저녁도 먹고 돌아와요, 우리. 맛있는 것도 많을 거예요. (당신의 마지막 말에 세상을 다 가진 듯 웃었다.)
 
어느새 밖이 어둑하게 가라앉았습니다.
 
마을을 나서기 위하여 광장으로 향하는 동안 까마귀 우는 소리가 허공을 가릅니다.
 
어쩐지 불온하게 느껴지는 소리가 끝나는 것도 찰나, 당신과 오드는 광장에 도착하고 이전과는 조금 다른 풍경을 마주합니다.
 
분명 텅 비어 있던 광장에 몇몇 마을 사람들이 나와 어슬렁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서로 한 마디도 않은 채 그저 어느 한 곳을 무심히 바라보고만 있었을 뿐입니다. 그 진득한 시선의 끝은,
 
호수를 향하고 있습니다.
 
광장에 모인 대략 열두엇쯤 되는 마을 사람들이 한 명도 빠짐없이 호수를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농도 짙은 침묵 속, 오드의 신발이 자갈을 밟아 부수는 소리가 났습니다.
 
그 미세한 소리에 반응하여, 맹목적으로 호수를 향하던 시선이 일제히 당신과 오드의 쪽으로 돌아오고……,
 
그들과 시선을 마주한 순간 다리가 얼어붙어 멈추어 버리고 맙니다.
 
모든 생각이 희게 표백되어 날아가고 선득한 침묵이 목덜미를 할퀴며 혀를 널름거립니다.
 
그들은 이방인인 당신에게 따뜻한 환영의 인사를 건네지도 혹은 없는 사람을 대하듯이 당신을 무시하고 지나치지도 않습니다.
 
광장에 모인 마을 사람들 전부가 핏발 선 눈으로 당신과 오드를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잡아먹을 것처럼 섬뜩하게, 죽여버릴 것처럼 악랄하게. 정제되지 않은 무례, 분명한 악의가 내재된 시선에 머리가 아찔해집니다.
 
SANC 1/1D2.
 
레이시:
SAN Roll
기준치: 75/37/15
굴림: 29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오랜 정적을 부수고 날선 여자의 목소리가 카랑카랑하게 울립니다.
 
오드가 녹빛 눈동자를 부릅뜬 채 당신과 저를 노려보는 마을 사람들에게 악을 쓰듯 소리를 지릅니다.
 
오드:비켜, 이 머저리들아!
 
그 음성에, 그 태도에, 그 낯에 공포라곤 찾아볼 수 없습니다.
 
<지능> 판정.
 
레이시:
지능
기준치: 55/27/11
굴림: 98
판정결과: 실패
…….
(그는 뒤늦게 오드의 앞을 막아섰다. 정신을 차려보니 그는 검을 뽑아들고 있었다.)
 
마치 이런 시선이 익숙하기라도 한 것처럼, 이런 시선이 전혀 아무렇지 않기라도 한 것처럼.
 
오드:(오드는 놀랄 만큼 단단한 힘으로 당신의 팔을 붙잡는다. 검을 넣으라는 듯 옷자락을 잡아 당겼다.)
 
당신의 팔을 친절한 방식으로 잡아 끄는 것과 다르게, 오드는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지저분한 욕설을 뱉으며 마을 사람들의 형형한 시선에서 당신을 보호하듯 감쌉니다.
 
오드:추접스러운 것들! 언제까지 그따위로 무례하게 굴 테야? 이 분은 손님이시라고! 당장 사라져, 너희의 싸늘한 집안으로 꺼져버려!
 
레이시:……이게 대체 무슨 일입니까? (어쩌면 황망하기까지 한 음성이다. 그의 귀에 오드의 음성은 제대로 들려오지 않았다. 핏발 선 눈이 짙게 남는다.)
 
오드는 대답을 주지 않습니다.
 
그녀의 고함에 주민들이 일제히 시선을 거둡니다.
 
시뻘겋게 충혈되어 악마의 것처럼 보이는 눈을 하고, 그들은 느릿한 걸음으로 흩어집니다.
 
군집을 이루었다가 다시 흩어져 사라지는 개미들처럼 차례차례 자취를 감추는 마을 주민들 사이 오드가 당신의 손을 잡아끕니다.
 
오드:너무 신경쓰지 말아요. 가끔 저래요. 다들 조금…… 이상해졌다고 했잖아요. (당신의 손을 붙잡은 채로 앞질러 걷는다. 급하게 내딛는 걸음마다 머리카락이 어지럽게 흩날리다가, 문득 뒤돌아보았다. 어딘가 초조해보이는 눈동자가 당신을 향한다.) 걱정 말아요. 나는… 달라요. 저 무례하고 한심한 사람들과는… 그러니까 어서 가요, 레이시. 어서요.
 
레이시:(무언가 단단히 잘못된 것을 확실히 인지할 수 있었는데도, 그는 왜 당신의 손을 뿌리칠 수 없었나. 과거 여동생에게 읽어주었던 동화의 내용처럼, 마치 당신과 자신이 이상한 세계 속으로 빠져버린 주인공이 된 것만 같았다. 무슨 소리냐 묻는다면, 그래. 그는 초조함 띄는 눈동자를 보고, 당신을 안심시켜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미쳐도 제대로 미친 거지.) 이 마을은 이상합니다. (그는 그런 말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걸어나가는 길이 어지럽게 구불거리는 것만 같았다.)
 
오드:… (당신의 말에도 오드는 대답이 없었다. 마을을 빠져나가며 가끔 뒤돌아 당신의 표정을 곁눈질하는 행동이 꼭 눈치를 살피듯 반복된다.)
 
<지능> 판정.
 
레이시:
지능
기준치: 55/27/11
굴림: 100
판정결과: 대실패
……왜, 그러십니까?
(머저리같은 그는 그런 물음을 건넬 수밖에 없었다.)
 
오드:아뇨, 그냥……… (푹 숙여진 고개 사이로 언뜻 보이는 뺨이 붉었다. 한없는 부끄러움에 사로잡혀 오드가 겨우 중얼거렸다.) 제가 싫어지신 건 아니죠? (욕은 하지 말 걸. 아니, 그냥 꺼지라고 한 마디만 할 걸. 예쁘지도 않고 평범하지도 못한 모습을 또다시 들켜 버렸다. 혹 당신이 저를 이상하게 생각하지는 않을까. 그런 걱정을 하며 여자는 붙잡은 손에 힘을 준다.) 그러지 마세요, 저 싫어하시면 안 돼요. 제가 어떤 사람이라고 해도…….
 
레이시:(싫어졌냐고? 왜 그런 물음을 건네지. 레이시 타사르는 단 한순간도 당신을, 당신을……. 소리 없이 숨을 들이켰다. 그의 생각은 한결같았다. 당신을 지켜주고 싶다. 적어도, 이 마을에선 빠져나오게 돕고 싶다. 당신이 손에 힘을 주기 직전 바로 그의 손에도 힘이 들어갔을 테다. 붙잡힌 손이 갑갑하다 생각될 정도로, 자각하지 못한 새 남자의 눈은 고요히 타오르고 있었다.) 그대. 지금 무엇을 두려워하고 계십니까?
 
오드:… (느리게 시선이 마주친다. 불꽃 일렁이는 듯한 당신의 눈동자. 다물렸던 입술이 천천히 벌어졌다.) 저는…… (불안하던 마음은 어느새 자취를 감춘다. 오드는 기민하게 느꼈다. 눈 앞의 당신, 이 아름답고 선량하고 죄 없는 사람이… 내 탓에 더럽혀지겠구나.) 외로운 게 싫어요. (아까의 걱정은 온데간데 없이 들뜬 미소가 피어났다. 두 뺨을 장미처럼 환히 붉히며 웃는다.) 그렇게 두지 않으실 거죠?
 
레이시:(이미 먼지며 얼룩진 상처며 온갖 것들로 붙은 회색빛을, 깨끗하다 부를 수 있었나?) ……외로운 것? (다만 그는 선량하다 말할 수는 있는 사람이었겠다. 다른 말로 하면 옳지 않은 상황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구부러진 것을 바로 잡아야 그 날 잠들기 위해 눈을 감을 수 있는 사람이었고, 바로잡진 못할지언정 조금이라도 구부러진 정도를 펴놓아야지만 숨을 내쉴 수 있었다. 그러기에.) 제가, 이 마을에서 그대를 데리고 나가겠습니다. (그는 손을 놓지 않았다.) 확실히, 안전한 곳으로…… 데려다 드릴 테니. (다만 그 이후를 확답하지 못했을 뿐.)
 
오드:고마워요. (어느새 눈썹을 떨군 채 애처로운 낯으로 당신을 바라보던 오드는 벅찬 마음을 갈무리하지 못한 척 당신을 폭 끌어안았다. 단단한 품에 아무렇지 않게 뺨을 기댄다.) 정말 기뻐요, 저….
 
갑작스런 오드의 포옹에 당신이 채 반응하기도 전, 어디선가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옵니다.
 
언제 이렇게나 걸었을까요? 벌써 야시장에 도착한 모양입니다.
 
환한 램프들이 밝히고 있는 야시장의 입구가 확실히 떠들썩합니다.
 
바로 이웃 마을은 이렇게나 침체되어 있는데 조금만 나오면 이토록 밝은 장소가 있다니, 제법 우스울지도 모르겠습니다.
 
레이시:(이곳의 사람들도 오드를, '그런'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나.)
 
야시장
 
도열한 램프들이 환하게 밝히는 길목에 위치한 야시장으로, 규모는 크지 않으나 다양한 물건이 판매되고 있습니다.
 
매대가 길게 늘어서 있으니, 원하는 물건이 있다면 한 번 찾아봐도 괜찮겠어요!
 
시장의 구석에는 사람들이 모여서 술판을 벌이고 있고, 또 다른 구석에는 아이들이 모여서 놀고 있습니다.
 
레이시:(우리는 여전히 손을 붙잡고 있었겠지. 그것을 하나 신경쓰지 않고, 레이시는 매대를 눈으로 살펴보았다.)
 
다양한 물건들이 판매되고 있는 매대입니다. 진부한 말이지만, 정말 없는 게 없어 보이네요.
 
무도한 마술에 사용하는 개구리의 뒷다리와 독사의 창자 따위조차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구매하고자 하는 것이 있다면 여기에서 찾아볼까요?
 
레이시:(그는 잠시 고민했다. 혹시, 뭐, 예쁜 리본이라던가 머리삔같은 게 있을까. 직접 찾아보진 않았어도 매대를 하나하나 눈으로 살펴가며 걸어갔다.)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여동생의 머리카락에 어울릴만한 색깔이……. 그런 생각을 하며.)
 
오드:(오드는 당신의 손을 꼭 붙잡은 채로 당신의 뒤를 쫄래쫄래 쫒아갔다.)
 
레이시:(……뒤늦게 묻는다.) 혹, 사고 싶은 것이라도 있으십니까?
 
저쪽 매대에서 당신이 찾는 장신구 따위를 팔고 있는 것 같군요.
 
오드:음… 저요? 저는 딱히… (호기심에 물건들을 툭툭 건드려 보지만, 금방 흥미를 잃고 당신을 바라보며 방긋 웃는다.)
 
레이시:(그리고 그는 그 매대 앞에 서서 장신구 여럿을 눈으로 꼼꼼히 살펴보았다.) 여동생이 있습니다. 돌아가면 선물로 줄까 하는데, 그대가 필요하다면 같이 사드려도 좋을 듯 하여……. (그리고, 그는 초록색 리본 하나를 들어 당신에게 보여주었다. 눈을 마주친다.) 이런 장신구는, 싫어하는 편이십니까?
 
오드:여동생이요? (오드의 눈이 반짝였다.) 와, 닮았어요? 이름이 뭔데요? 몇 살이에요? 너무 귀엽겠다. (몇 마디 질문을 와르르 쏟아내다가 눈이 마주치면 입을 딱 다물었다. 리본과, 당신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아뇨! 정말 좋아하는데요. (크리스마스 선물을 기다리는 아이처럼 설레는 낯을 하고 웃는다.)
 
레이시:(남자는 당신의 열렬한 반응에 잠시 당황한 듯 싶었으나, 그 우직한 성정에 맞게 곧 입을 열었다.) 닮…지는 않았습니다. 이름은, …레이나. 열 살배기에 불과합니다. (아마도 입술을 다문 타이밍은 비슷했겠다. 벅적한 야시장 가운데 당신과 제 사이로 잠깐의 침묵이 감돌았나, 그는 그것을 깨트리지 않고 리본을 든 손으로 당신의 뺨을 살짝 스쳐, 귓가의 머리카락을 해치듯 손을 뻗었다. 그러면 기어코 손가락 끝이 귓가를 간지럽히듯 스치고 마는데.) ……잘 어울리는 듯 합니다. (그는 곧장 손을 빼지 않고, 뒤늦게 손을 거두며 희미하게 웃었다. 뒤돌아 여동생에게 선물해줄 푸른색 리본과 함께, 초록색 리본을 구매한다.)
 
오드:열 살이면, 진짜 귀엽겠… 다. (어쩐지 어색한 기분에 느릿느릿 대답하다가 당신의 손이 뻗어오면 저도 모르게 숨을 들이켰다. 잔뜩 긴장한 채 치맛자락을 꼭 부여잡고서.) …… (손 끝이 뺨을 스치면 어깨가 눈에 띄게 움찔한다. 눈을 감지 않으려 애쓰다가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오면 홀린 듯이 시선이 향했다.)
(지금 웃었어?)
(오드는 퍽 멍청한 얼굴을 한 채 당신을 바라보았다. 뒤돌아 계산을 하는 순간에도 아무 움직임 없이 제 자리에 굳어 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레이시:(그는 굳어있는 당신을 보고 잠시 걸음을 멈추었지만, 다시 거리를 좁혀 물건을 계산하느라 떨어뜨렸던 손을 맞잡았다. 이끈다.)
(사람들이 모인 술판 근처를 지나친다.)
 
오드:(여전히 반쯤 굳은 상태였으나 무의식중에 이끌려 걷는다.)
 
떠들썩한 시장의 구석, 사람들이 모여 술판을 벌이고 있습니다. 다양한 에일과 맥주를 마시며 소란스럽게 떠들고 있군요.
 
웃고 떠드는 사람들이 발산하는 열기와 에너지가 어마어마합니다…… 당신이 떠나온 마을과는 놀라울 정도로 다른 풍경입니다.
 
술판을 기웃대는 두 사람을 발견한 한 인심 좋아 보이는 여자가 제 옆을 두드립니다.
 
: 거기 뭐야, 외지에서 오셨나? 뭘 그렇게 쭈뼛대고 있어! 이리 와서 당신들도 껴요.
 
레이시:(잠시 오드를 돌아본다. 목소리를 낮춰 묻는다.) 저 자들은 괜찮은 치들입니까? 정 그렇다면 저 혼자 술판에 끼어 정보를 조사해도 괜찮습니다.
 
오드:(어떡해, 어떡해, 어떡해, 어떡해, 어떡해, 어떡해!) ─네?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당신을 바라보았다. 뺨이 약간 붉었으나 얼른 고개를 끄덕거린다.) 네, 네. 그럼요. 전 이웃 마을 사람들은 잘 몰라서… 다녀오시면 여기서 기다릴게요. 아, 봐요. 여기 마실 것도 많은걸요! (근처에 있는 술병을 아무거나 붙잡아 흔들어 보인다.)
 
레이시:(그래도 걱정이 되었는지, 아직도 손을 놓지는 못하고 있었다. 여러 일들을 거친 지금 레이시의 안에서 당신의 이미지는, 뭐랄까. 지켜줘야 하는 가녀린 여성 쯤?) ……그렇다 해도 술은 드시면 안 됩니다. 술은 말고, 아니지. 음료는 참고 계십시오.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신신당부 한다.)
 
오드:네에, 네. 얌전히 있어야죠. 그럼요. (당신이 저를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알고는 있는지. 손 꼭 붙잡은 채 고개만 연거푸 끄덕거린다.)
 
레이시:(미덥지 못했지만! ……그래도 해야 할 일은 있었으니 말이다. 한숨을 한 번 내쉬곤 손을 놓았다. 사람들 사이로 향한다.)
 
다들 떠들썩한 분위기 속에서 술을 들이마시고 있습니다. 기분이 좋아 보이니, 질문에도 순순히 대답해줄 듯 하네요.
 
레이시:(헛기침 한 번.) 안녕하십니까, 다들 즐거워 보이십니다. 옆 마을에서 오게 되었는데…. (서두는 상투적인 말들로 가득 채워보고선, 그는 몇 마디 말을 나누지도 않고 바로 본론을 캐물었다. 어차피 술 깨면 기억도 못할 사람들인 것 같아서.) 요즘 이상한 일이 많이 일어나지 않습니까? 그쪽은 좀, 괜찮습니까?
 
: 엉? '옆 마을'에서? 거 아직도 사람이 살고 있긴 했나 보구만. (술에 취해 코가 붉어진 아주머니 한 분이 그를 돌아보았다.) 우리 마을에는 별 일 없는데. 뭐 어디 큰 일이라도 난 거요?
 
레이시:(아직도 사람이 살고 있냐고.) …사람들이 조금 이상하게 굴기는 하더군요. 저는 한참 직업으로 인해 외지를 다녀온 터라, 사실 마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건지 정확히 모릅니다. 알고 계시는 게 있습니까? (그리고선 나름의 예의로 빈 술잔마다 술을 따라주었다.)
 
: 캬, 젊은이가 따라주니 술맛도 좋구만. (당신이 건넨 술을 단숨에 들이키고는 입가를 문질러 닦아내며 대꾸한다.) 나도 잘은 몰라. 요즘 그 마을 사람들이 통 보이질 않는다는 거 빼면? 왕래가 끊긴 지 한… 세 달쯤 됐나. 마을에만 쳐박혀서 얼굴도 비추질 않으니 지금은 완전히 고립된 꼴이지.
 
레이시:(세 달.) 그렇군요. 저도 마을 사람들을 제대로 보지 못해서 여쭤보았던 것인데……. 아. 그러고보면. 혹시 호수에 대한 소문을 아시고 계십니까? 저번에 몇, 빠져죽었다 했던 것 같은데요.
 
: 호수? (귀를 후벼파는 시늉을 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뭐 귀신이 나온다 어쩐다 유명하긴 하던데. 누가 죽었대? 거 사람 잡아먹는 호수구만.
 
: …호수에 사는 마녀가 있다느니… 그런 얘길 들었던 것 같기도 하고. 에라, 몰라. 기억 안 난다! (그렇게 외치더니 아주머니는 다시 술병을 들이키기 시작했다.)
 
레이시:(세 달 전, 마녀.)
(그는 적당히 옆 마을 사람들과의 대화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드에게로 돌아온다. 그는 어떤 상태였지?)
 
오드:(몇몇 여자들 사이에 둘러쌓여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다. 뺨에 발갛게 홍조가 오른 것 같기도 하고. 손에 빈 술잔 하나를 꼬옥 쥐고 있다.) 으음, 네, 그런데요… (모인 사람들 사이 몇 마디 대화가 오가면 왁 하고 웃음이 터져나온다. 오드는 조금 어색한 듯 굴다가도 덩달아 웃음을 터트리며 입가를 가렸다. 누군가 자연스럽게 술잔을 채우면 무의식중에 또 입술을 적시고.)
(아무튼 알딸딸한 기색이 역력하다.)
 
레이시:(남자는 두터운 손으로 끝내 얼굴을 쓸어내리고 말았다. 한숨은 그 안으로 부서진다. 그는 꽤나 거구의 남성이었기 때문에 여자들이 빙 둘러앉은 근처에 접근하는 것만으로도 눈빛이 쏠리기 마련이었다. 우선은, 부른다.) ……오드. (붉어진 뺨을 본다.) 이만 갈 때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마시지 말라고 했는데…….)
 
오드:어, 레이시…… 미안해요. 지인짜 딱 한 잔만 마시려고 그랬는데, 자꾸 술을 주셔서… 진짜 한 잔만 하려고 했는데… (오드가 휘청이며 자리에서 일어선다. 부스스 흐트러진 머리칼을 하고서 헤실헤실 웃었다.) 저 근데… 많이는 안 취했어요오.
 
: 뭐야, 총각. 우리 한창 재미있게 놀고 있는데 왜 방해하고 그래? 아가씨 애인이야? (그 말에 무엇이 웃겼는지 사람들이 다시금 깔깔 웃어댔다.)
 
오드:악! 그런 거 아닌데요! (놀림에 얼굴을 새빨갛게 붉혔다. 허공을 배회하던 손이 당신의 옷자락을 꼭 붙든다.)
 
레이시:(아니다. 정말 많이 취했다. 그는 반쯤 다른 이의 말을 흘려들으며 제 옷자락을 꽉 붙든 채 얼굴을 새빨갛게 붉힌 오드를 바라보다가, 저도 모르게 이상한 상상을 하다가. 눈을 질끈 감으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이곳은 바깥이고, 오드는 만난 지 얼마 안 된 여성이다. 나에게는 이 마을을 조사해야 할 의무가 있고, 중얼중얼.) ……이만 돌아가야겠습니다. 실례했습니다. (오케이. 정리를 끝낸 뒤엔 오드의 한쪽 어깨를 감싸듯 팔을 둘러 잡고 자리를 벗어났다. 그런데, 지금. 너무 밀착되어있지 않나? 어쩔 수 없었다. 그에게는 이 자세가 오드를 '부축하는' 것 뿐인 자세일 테였으니까.)
 
: 어이, 총각, 거 잠깐만 기다려봐. (자리를 뜨려는 당신을 붙잡는 손길들.)
 
: 여자를 데려갈 거면… 퇴장주를 마셔야지? 우리 마을에 규칙이란 게 있거든. (씨익 웃어 보인 여자가 큼직한 사발 하나를 탁 내려놓는다.)
 
레이시:(붙잡는 손길에 그의 얼굴이 살짝 찌푸려들다 말았다. 누군가가 제 몸을 예기치 못하게 접촉되는 상황은 달갑지 않았다. 기감을 세우게 되니까. 이곳은 전장터가 아닌데도. 한숨을 삼켰다. 그런데, 뭐?) ……퇴장주 말입니까? (유쾌하진 못한 표정.)
 
: 총각은 술 좀 하나? 아가씨는 영 약하던데. (재밌는 건 잡았다는 얼굴로 당신을 바라보는 시선들.)
 
레이시:(득달같이 달려드는군. 그는 사내들의 이런, 같잖은 문화를 꿰차고 있는 편이었다. 원한다면 무시한 채 오드만 데리고 이 자리를 빠져나가도 좋았겠지. 하지만 그 또한……나름의 '자존심'이라는 것이 있었기에.)
글쎄요. (큼직한 사발을 들어 망설임 없이 마시기 시작한다. 점점 뒤로 기우는 고개, 크게 울렁이는 목울대. 얼마나 시간이 흘렀지? ……탁. 내려놓은 사발 안은 깨끗하게 비어있었다.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 다소 날카로운 눈으로 사람들을 바라본다.) 좀 하는 편이긴 합니다. ……이만 가도 좋겠습니까?
 
: (시끄러운 환호성과 웃음 소리가 들려온다. 사람들은 두 사람을 박수로 배웅했다.)
 
시장 구석에서 아이들이 깔깔대며 즐겁게 뛰어다니고 있습니다.
 
당신을 발견한 후엔 "어! 외지인이다!" 하고, 소리를 지르며 다가오는군요.
 
: 안녕하세요! 어디에서 오셨어요? 저희는 저기 밑 마을에서 왔어요! 야시장 때문에 온 거예요? 별 것도 아닌데!
 
레이시:(그는 무뚝뚝하고 험악한 인상, 큰 몸집과는 달리 아이들을 다루는 데 꽤 익숙한 사람이었다. 조금은 당황하긴 했지만.) ……옆 마을에서 왔는데, 야시장 때문에 온 게 맞아. 그러는 너희들도 별 것 없는 야시장을 보러 왔나?
 
: (아이들이 자기들끼리 시선을 교환하다가 고개를 끄덕거리며 웃었다.) 네. 근데 옆 마을에서 왔어요? 옆 마을 사람 엄청 오랜만에 봐요! 거기 진짜 마녀가 있어요?
 
레이시:(또다시.) ……마녀의 소문이 자자한가봐? 좀 더 자세히 알려줄 수 있나?
 
: (아이들 여럿이 너도나도 목소리를 높였다. 알아들을 수 있는 단어가 몇 없었으나.) 옆 마을이 마녀한테 저주를 받아서 망해 버렸대요! 엄청 무섭고 징그러운 마녀라고 하던데!
 
레이시:……삼 개월 전부터?
 
: (소란이 단숨에 잦아들었다.) 어, 맞아요. 세 달 전부터.
(그러더니 또다시 쏟아내는 목소리들.) 마녀는, 두꺼비의 혀와 누런 손톱을 가졌고, 코는 매부리코에 입은 귀까지 찢어져 있대요! 부릴 수 있는 마술이 천 개도 넘는대요! 눈이 마주치면 돌이 돼버린대요!
 
레이시:(그리고 어째서였을까. 그는 고개를 돌려 오드를 바라보았다. 술에 취해 뺨이 한참 붉어졌던, 흐리멍덩한 눈빛을 띄던.)
(그대, 오드.)
(무슨 표정이었지?)
 
오드:(붉게 술기운이 오른 얼굴로 당신의 어깨에 몸을 기대고 있던 오드가 느리게 눈꺼풀을 깜빡였다. 시선이 닿으면 부스스 웃는다.) 으응? (졸음에 겨운 낯이었다. 눈을 찡그리다 또 헤헤 웃는다.) 왜요, 레이시?
 
레이시:(웃는 얼굴, 또다시 정신이 아뜩해지는 듯 해 레이시는 길게 눈을 감았다 떴다. ……이러려고 바라본 게 아닌데 말이다. 어쨌거나, 아무 것도 모르는 듯 하니 됐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속닥이곤 아이들을 바라본다.) 아무튼, 또 다른 이야기는 모르는 것이 맞지?
 
: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레이시:……. (그렇다면 됐다. 손짓하며 아이들을 물러나게 하고, 우리는. ……자신이 부축하고 있는 오드를 돌아보았다. 그는 그 짧은 사이 아주 많은 것을 고민했다.) ……이만 돌아갈까요?
 
오드:(오드는 여전히 당신 품에 고개를 기댄 채로 고개를 끄덕인다.) 네에에. 돌아가요.
 
레이시:(오드를 부축한 채 걸었다. 끌어안겨진 몸에서 열기 따위가 느껴지는 듯 했다.)
 
두 사람은 은은한 달빛이 비추는 밤길을 걸어 오드의 집으로 돌아옵니다.
 
2일차, 밤.
 
한참 야시장의 떠들썩한 분위기를 즐기고 나자 기운이 다 빠집니다.
 
시끌벅적한 사람들의 모임을 뒤로 하고 고요하게 가라앉은 마을로 향하자 정적이 내려앉습니다.
 
어지러울 정도로 시야에 어룽지던 불빛들은 전부 사라져 있고 당신의 손에서 흔들리는 램프 하나만이 길을 밝히는 불의 전부입니다……
 
새삼 이 마을이 지금 얼마나 쇠락했는지가 느껴지는군요. 허허로운 밤입니다.
 
집 안에 들어서자 오드가 냉큼 의자에 앉더니 담요를 끌어당겨 몸을 덮습니다.
 
레이시:(콩벌레같군… 그런 생각을 잠깐 했다.)
 
오드:(꾸물대며 담요 속에 들어가더니 머리만 쏙 내놓았다.) 저어, 잠시 눈 좀 붙일게요. 너무 졸려서…… (크게 하품. 졸음과 술기운이 역력한 눈으로 치켜든 손가락을 불쑥 내민다.) 그치만! 전 밤에 아주아주 중요하게 할 일이 있으니까 주무시기 전에 꼭 깨워 주셔야 해요. 아셨죠? 꼭이요……
 
레이시:(중요한 일? 중요한 일이 뭔데. 그렇게 물을래도, 내밀어진 손가락을 보면 할 말을 잠시 잊고 만다. 그는 저 의미를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럴 때엔.) ……보고. (손가락을 걸었었지. 스스로도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얼굴을 가지고 당신을 바라보고 있었을 것이었다.)
 
오드:(당신과 손가락을 걸고 나면 만족한 표정으로 헤헤 웃었다. 그러다 얼마 못가 꾸벅꾸벅 졸기 시작한다.)
 
오드는 금세 잠에 빠져듭니다.
 
레이시:(그리고 그는 어떤 특별한 활동을 하지 않았다. 한참이나, 한참동안 잠에 빠져든 오드를 바라보다, 더 자세를 편하게 고쳐주고, 어깨까지 이불을 다시 끌어올려 덮어주고. 나지막히 물어보았을 뿐이었다.)
그대, 마녀입니까?
…….
(그러나 잠든 사람에게 물어보아 무엇 할까.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새근새근, 작은 숨소리로 집안이 가득해집니다.
 
그 평화로운 고요에 익숙해질때쯤.
 
철컥.
 
레이시:…….
(검을 들었다.)
 
…서랍장의 잠금이 풀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이건… 그래요, 아마도.
 
레이시:(숨을 조용히 내쉬었다. 검을 다시, …집어넣는다. 뭐지?)
 
어제 오드가 자신의 일기장을 감춰 놓은 서랍인 것 같네요.
 
레이시:(잠든 오드를 한 번 바라보다가, 조용히 몸을 일으켰다. 필요할 때면 그는 손쉽게 소리를 죽였다. 잠긴 서랍장을 열어본다.)
(일기장이 있나?)
 
일기장은 얌전히 놓여 있습니다.
 
레이시:…….
(그가 속닥였다.)
그대가 정녕 마녀라면…….
(……일기장을 펼쳤다.)
 
일기장은 얼기설기 어설프게 제본된 낡고 작은 책입니다. 동글동글한 손글씨로 적혀 있군요.
 
기실 책보다는 얇은 노트에 더 가까운 모습입니다.
 
3회의 시간을 투자하여 내용을 해독할 수 있습니다.
 
읽어 볼까요?
 
레이시:(읽어보자.)
 
당신은 적혀있는 글자들에 집중하여 내용을 해석해나갑니다.
 
*노트의 1회차 연구가 완료되었습니다.
 
시간은 어느새 새벽이 다 되었군요. 레이시, 잠든 오드를 깨울까요?
 
레이시:(……눈이 뻐근해 잠시 마른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어느덧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나. 노트를 다시 서랍장에 넣고, 잠들었던 오드를 불러본다.) 그대. ……아까 깨워달라 하지 않았습니까? 일어나시지요. (그리고 잠든 아녀자의 몸에 손을 대는 것은 그의 기사도가 아니었다. 멀찍이서 부를 뿐이다.)
 
오드:(오드가 인상을 찌푸리는 듯 하더니 부스스한 얼굴로 몸을 일으킨다.) ……으으… (술이 좀 깼는지, 마른 세수를 한 번 하더니 당신을 바라보았다.) 벌써 새벽이네… 고마워요, 레이시. 이제 주무실 거죠?
 
레이시:(깨우기 직전 준비해두었던, 적당히 젖은 수건을 건네주었다.) 그런데, 그 중요한 일이 무엇이길래… 이러십니까?
 
오드:(젖은 수건을 기쁘게 받아들었다. 물을 꺼려하는 고양이처럼 얼굴을 대강 문지르더니.) 비밀이에요. (의뭉스럽게 웃어 보인다. 옷을 탁탁 털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아, 레이시는 어서 주무세요. 저는 이 시간이 제일 바쁘답니다.
 
레이시:(곧장 잠에서 깨어나는 모습이, 조금은 아쉽기도 했, ……잠깐. 뭐가 아쉬워?) 고작해야 쪽잠을 잔 건데, 그렇다면 그대는 대체 언제 자는 것이지? (스스로 좀 놀라긴 했지만, 일단 더 꼬치꼬치 캐물어본다.)
 
오드:음, 레이시가 잠들고 나면요? (당신이 질문이 많은 것을 별로 이상하게 여기지는 않는듯 하다. 제게 궁금한 것이 많아졌다니, 긍정적인 신호가 아닌가. 뭐 그런 낙관적인 사고 방식이 흐르는 중.) 평소에는 낮잠도 많이 자구요. 원래 잠이 없는 편이에요.
 
레이시:……그렇다면, (원래라면 이쯤 했을 때 끊고 넘어갔을 텐데. 그는 이제 자꾸만 당신에게 신경이 쏠리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내일 아침은 내가 하도록 하지. 그 조건으로. ……어떻습니까?
 
오드:어어. (그런 조건을 달 줄은 몰랐는지 좀 멋쩍은 얼굴로 뺨을 긁적이다가.) 정말 제가 만들어도 괜찮다니까요… 그래도 정 원하시면, 알겠어요. 아침에 일찍 깨워 드릴게요. 같이 준비해요.
 
레이시:(당신이 제안을 승낙하기까지 했는데, 그는 자그마한 미련이 남아 대화를 완전히 끝마치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마지막으로, 다시 물어본다.) ……역시, 말씀해주실 생각은 없는 것입니까?
 
오드:정말 별거 아니라니까요. (태연스런 웃음.)
(이내 잠자리로 당신의 등을 떠밀었다.) 아이, 정말. 궁금한 건 내일 묻고… 얼른 주무셔요. 이러다 마을 사람들 다 깨우겠어요?
 
레이시:(떠밀릴 때에서야 그가 난감한 숨을 흘리며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알겠습니다. (끝내 포기하고 만다.)
 
당신은 겨우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레이시, <정신력> 판정.
 
레이시:
정신
기준치: 75/37/15
굴림: 61
판정결과: 보통 성공
 
분명 제대로 잠들어 있던 당신의 바로 누운 당신의 가슴팍에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집니다.
 
거대한 바위 혹은 인간을 위에 얹은 듯한 무게감입니다. 압력에 호흡이 버거워지고 심장이 세차게 박동하며 갈비뼈에 부딪히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손가락도 하나 움직일 수가 없어요…….
 
당신은 환상통을 느끼며 잠에서 깨어납니다. 등줄기가 서늘하게 식어 있습니다.
 
잠에서 깨어나자 가슴을 짓누르던 무게감이 거짓말처럼 사라졌지만 기분 나쁜 것은 여전하군요.
 
오드:쉿, 괜찮아요. 다시 눈 감아요…
 
어디선가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당신은 그 부드러운 음성에, 저항하지 못하고서 다시금 눈을 감습니다.
 
기분 나쁜 감각이 차츰 사라집니다. 깨었던 이성은 다시 깊은 수면으로, 수면으로… 빠져듭니다.
 
3일차, 오전.
 
맑게 지저귀는 새 소리와 함께 당신은 눈을 뜹니다.
 
새삼스럽지만 이 마을의 아침 공기는 꽤 차갑고 맑습니다. 매일 아침 일어날 때마다 찬물을 뒤집어쓰는 기분이 들 정도로요.
 
오드가 약속대로 곁에서 당신을 깨우고 있습니다.
 
오드:레이시? 아침이에요. 피곤하시면 더 주무셔도 되구요… (목소리는 뒤로 갈수록 작아져 속삭임이 되었다. 깨우려는 건지, 재우려는 건지.)
 
레이시:(천천히 눈을 떴다. 일렁이는 붉은 빛에, 순간 꿈인가, 싶다가도.) ……그런 식으로, ……넘어가려 하십니까…. (큼, 작게 헛기침하며 몸을 일으켰다. 평소보다도 낮은 목소리가 튀어나왔을까. 목을 가다듬으며 당신을 바라보았다. 옅은 졸음기가 남아있다.)
 
오드:…금방 깨시네요. (잠깐 입술을 삐죽였으나. 졸음기 남은 당신의 모습에서 한참 시선을 떼지 못한다.) 아침… 은… 드시고 싶은 거 있으세요? 재료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요…… (자꾸만 말꼬리가 늘어지며.)
 
레이시:(한 차례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고, 작은 휘청임도 보이지 않고 일어난 뒤에는 그마저의 졸음기도 찾아볼 수 없었을 테다.) 뭐, ……일단 재료부터 볼까요. 약속대로 제가 요리할 테니, 그대는… 쉬고 계시겠습니까? (말하며, 보관되어있을 식재료를 보러 향했다.)
 
오드:싫은데요? 이 부엌의 주인은 엄연히 저인걸요? 게다가, 제가 없으면 심심하실걸요? 진짜루요. (재잘재잘. 당신의 뒤를 졸졸 따라간다.) 같이 가요, 레이시~.
 
정겹고 소란스러운 가운데 어찌저찌 식사를 마칩니다.
 
어제 못 본 마을을 돌아볼 시간이군요.
 
오드의 집을 떠나 마을로 향하는 길, 둘은 몇 번이고 걸어 이제 익숙한 길을 통해 마을의 중심부인 광장으로 향합니다.
 
이 마을에는 별다른 것이 없습니다. 어제 들렀던 야시장의 화려함과 떠들썩함도, 아이들의 웃음 소리와 목 비틀린 닭이 내는 신음과 술 취한 아낙네들의 시끄러운 비명도 없이, 그저 고요하고 잔잔하고 한없이 무거울 뿐입니다.
 
광장에 들어서고 나자 광장에 어슬렁대던 모두의 이목이 당신에게로 집중됩니다.
 
갑작스레 등장해서 그런 건지, 외지인이라서 그런 건지─그런 것치곤 벌써 이 마을에서 두 밤을 보냈지만 말입니다─그닥 호의적인 시선은 아닙니다.
 
돈 주고도 못 받을 대접이네요. 돈 받고도 안 받고 싶은 대접이기도 하고.
 
그런데 이상하네요. 해가 머리 꼭대기에 뜬 대낮인데도 마을 주민들이 나와 있군요.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분명 해가 지기 전까지는 아무도 건물 밖으로 나오지 않았었는데…….
 
<관찰> 판정.
 
레이시:
관찰력
기준치: 75/37/15
굴림: 98
판정결과: 실패
 
마을 사람들은 모두가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있습니다. 그림자가 진 얼굴들은 하나같이 안색이 나쁩니다.
 
다들 조금씩 아파 보여요. 영 꺼림칙합니다.
 
문득 당신의 옆에 선 오드에게로 고개가 돌아갑니다. 그녀는 고개를 기우뚱대며 미간을 살짝 구기고 있습니다.
 
입술이 벌어지고,
 
오드:……왜 낮에 돌아다니지? 이상하네.
 
무심코 독백에 가까운 혼잣말을 한 오드가 아차 하는 얼굴로 당신을 바라봅니다.
 
이윽고 얼굴에 슬그머니 떠오르는 곤란한 웃음,
 
꼭 죄 지은 아이가 매를 들고 달려드는 부모의 앞에서나 지을 법한.
 
오드:… (저도 모르게 흐른 혼잣말을 수습하려는 듯 얼른 당신의 팔을 붙잡고 걸음을 옮긴다.) 우리 빨리 가요, 레이시.
 
레이시:(그리고 당신의 그런 행동들이 거듭될 수록 그가 어떤 문장을 속으로 굳히고 있었는지, 알고 있었을까. 여전히 그는 무엇도 입 바깥으로 내뱉지 않았을 뿐이지만.) ……어디로 가실 겁니까?
 
오드:(아무렇게나 걸음을 내딛다가 당신을 돌아본다.) 음, 그러게요, 레이시는 어디 먼저 보고 싶으세요? 저는 의상점이나, 정원도 좋구요… (정리되지 못한 어조로.)
 
레이시:(우리는 오늘도 손을 붙잡고 있었나. 이젠 그것이 너무나도 자연스러웠다.) ……그렇다면 의상점 먼저 가도록 하죠. (그리고 그는 살짝 속도를 높여 당신의 옆을 가로질러 걸었다. 묘하게 앞서나가듯, 함께 걷듯, 발걸음이 맞다 멀어지다를 반복했다.)
 
의상점
 
청과점 근처에 위치한 의상점으로, 분홍색으로 꾸며진 가게의 외관과 마네킹에 입혀진 다소 촌스러운 붉은색 드레스가 가게 주인의 취향을 짐작케 합니다.
 
다 시든 꽃다발이 걸린 문의 군데군데 쥐 파먹은 흔적으로 보이는 구멍이 뚫려 있습니다.
 
들어선 의상점의 내부에는 거미줄과 다 낡은 의상 더미, 재봉틀, 코르셋, 원단 뭉치 따위가 보입니다.
 
먼지 쌓인 테이블 주위로, 유독 쥐에게 갉아먹힌 흔적이 많이 보이네요. 하긴, 쥐 따위에게 취약한 장소이긴 하죠.
 
레이시:(마네킹을 본다.) 그렇지만 오늘도 주인은 없을 듯 합니다만….
 
툭 치면 쓰러질 것 같은 낡은 마네킹이 다소 촌스러운 붉은색 드레스를 입고 있습니다. 가슴과 어깨를 조금만 덜 드러내는 디자인이었더라면 나았을 텐데요.
 
드레스의 밑부분에 쥐 파먹은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는 걸로 보아 이 의상점 역시 꽤 오래 전에 버려진 것 같습니다.
 
레이시:(낡은 의상 더미를 발로 툭 건드려본다.) 다 똑같군.
 
코르셋과 슈미즈, 페티코트 따위의 속옷들이 어지러이 널린 의상 더미입니다.
 
정리되지 않아 난잡하고 산만한 의류 더미 옆에 종이 쪽지가 하나 내던지듯 놓여 있습니다.
 
레이시:……. (종이 쪽지를 본다.)
 
동글동글하고 귀여운 글자로 적은 종이 쪽지입니다만, 적힌 내용은 영 귀엽지 않습니다.
 
[그년에겐 어떤 옷도 팔지 말아요! 언니도 봤잖아요, 그년이 내 남편에게 꼬리를 쳤다니까요?]
 
레이시:(이제는 이런 쪽지들에서 지칭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원단 뭉치를 본다.)
 
의상점의 구석, 다양한 무늬가 박힌 형형색색의 원단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습니다.
 
줄기와 덩굴 등이 얽히고설킨 아름다운 무늬를 금사로 박아 두었으니 꽤 질 좋은 옷감인 것 같습니다.
 
<관찰> 판정.
 
레이시:
관찰력
기준치: 75/37/15
굴림: 20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원단들의 구석, 오드가 입은 옷의 원단으로 보이는 옷감도 있습니다. 오드 역시 이 의상점에서 옷을 맞춘 모양입니다.
 
레이시:(먼지 쌓인 테이블 위를 본다.)
 
재봉틀과 반짓고리, 큰 상자, 드레스 여러 벌과 원단, 재봉가위 따위가 어질러진 테이블입니다.
 
전부 거미줄이 잔뜩 쳐져 있군요. 만지기가 꺼려집니다.
 
레이시:(큰 상자를 열어본다. 그는 거리낌 없었다.)
 
푸른 종이로 포장된 상자의 안에는 곱게 접힌 푸른 드레스가 한 벌 들어 있습니다.
 
원단도 그렇고 디자인도 그렇고 런던에서 입어도 손색이 없을 수준이라, 이 의상점에 있는 옷들 중 가장 고급스러워 보입니다.
 
드레스 위에 단정히 올려진 종이 쪽지가 하나 보이네요. 누군가 선물용으로 주문한 옷인 모양이에요.
 
레이시:(눈살을 찌푸렸다. 분명 아름다운 옷인데, 왜이리 시선이 안 가는지. ……드레스를 보던 시선을 떼어내 제봉가위를 보았다.)
 
날카롭지는 않습니다만 묵직하고 제법 큰 재봉가위가 테이블에 어질러져 있습니다.
 
무기로 써도 괜찮을 것 같아요. 이런 시골 마을에서 무기를 사용할 일이 뭐가 있겠냐만은…….
 
레이시:(그래, 그리고 이미 그는 검이. ……잠깐. 가위를 집었다.)
그대, (부르며, 손잡이 부분을 건네준다.) 가지고 계십시오.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오드:제가요? (동그랗게 뜬 눈을 깜빡인다. 일단은 순순히 받아들었다. 서늘하게 와닿는 금속의 촉감. 손에 쥔 것을 가만 매만져 본다.) 남의 물건인데, 가져가도 괜찮을까요?…… 어떻게 써야 할지도… 잘 모르겠는데.
 
레이시:(그 말에 그는 말 없이 눈을 굴려 주변을 둘러보았다. 목소리가 살며시 낮아진다.) 스스로를 지키는 용도입니다. ……그대를 싫어하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까.
 
오드:…… (가위를 품 속으로 감추었다. 그러나 당신을 바라보며 웃는 눈에는 한 치 두려움이 없다. 어디서 샘솟는지 모를 확신. 되려 보는 이를 섬뜩하게 만드는.) 전 겁나지 않아요. (사뭇 달콤한 음성이다.) 레이시가 지켜줄 거잖아요. 그렇죠?
 
레이시:(그리고 그는 당신을 단 한 번도, 두려워한 적이 없었기에.) ……사람 일은 혹시 모르는 법이니까요.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교회로 향해보자.)
 
오드:(당신을 따라 걷던 오드는 품 속의 가위를 만지작대다가 뒤를 흘끔 돌아보았다. 몸을 돌려 의상점 안으로 달려가더니 푸른 드레스를 갈기갈기 찢어 놓는다. 그런 뒤에야 홀가분한 표정으로 당신을 쫒아갔다.) 교회는 저 쪽이에요, 레이시!
 
교회
 
마을의 구석에 위치한 작은 교회로, 관리만 제대로 됐더라면 수수하지만 정갈한 멋이 있어 제법 우아해 보였을 것 같습니다.
 
이 작은 마을엔 따로 회관이 존재하지 않으니 아마 교회가 그 역할을 겸했겠죠.
 
텅 비었음을 알리듯이 담쟁이덩굴이 교회의 벽과 창을 타고 기어 올라 있습니다.
 
교회의 내부는 을씨년스럽고 쓸쓸합니다. 공기는 음울할 정도로 차갑고 구석진 곳마다 거미줄이 드리워져 있습니다.
 
언제 미사를 드렸는지, 아니 그 이전에 사람들이 정말 이 교회를 다니긴 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쇠락하였습니다.
 
교회가 워낙 작은 만큼 일렬로 늘어선 신자석과 맨 앞의 강단을 제외하면 별다른 것이 보이지 않습니다.
 
레이시:(신자석을 눈으로 살폈다.)
 
일렬로 늘어선 나무 의자들에는 먼지만 쌓여 있습니다.
 
그 어디에도 사람이 앉은 흔적이 보이지 않는 것을 감안하자면, 아무래도 모종의 사유로 교회가 쇠락한 후 그 누구도 다시 이 교회에 진입하지 않았다고 추론하는 것이 타당할 듯싶습니다.
 
신자석의 바닥에 버려진 쪽지 크기의 종이가 한 장 보입니다.
 
레이시:(종이를 주워들어 읽는다.)
 
둘 이상의 글씨체가 번갈아가면서 적힌 종이 쪽지입니다. 미사에 참여하였던 이들이 종이에 필담을 나누었던 흔적으로 보입니다.
 
꽤 서툴고 엉망인 글씨로 적혀 있군요. 어린 아이들이 썼던 쪽지일까요?
 
: 어른들은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야?
- 나도 잘 몰라. 아까 무슨 마녀가 어쩌고 하던데.
헉, 마녀? 성경에 나오는?
- 응. 근데 아까 에밀리랑 한나가 엿들어보려고 했는데 엄청 혼나고 쫓겨났대.
치사하다! 왜 우리만 안 알려줘? 어리다고 무시하는 거지?
- 그런가봐. 어른들은 다들 바보야. 우리가 얼마나 용감한데.
 
: 맞아. 마녀 따위는 가볍게 이겨버릴 수 있다고! 어디 와보라지.
 
레이시:(마녀는 원래부터 존재했나? 그도 아니라면, 만들어진 것인가. 그런 것들을 생각하며 강단으로 나아갔다.)
 
제법 견고하고 질 좋은 나무로 만들어진 높은 강단입니다. 먼지가 두텁게 앉고 거미줄이 쳐진 지금 목재가 다 무슨 소용이 있겠냐만은요.
 
강단의 위에는 은으로 만든 촛대 하나와 '회의 기록'이라 적힌 종이 한 뭉치만 덩그러니 놓여 있습니다.
 
레이시:(촛대를 본다.)
 
섬세하게 세공된 아름다운 촛대입니다. 꽤 값비싼 물건으로 보입니다.
 
<관찰> 판정.
 
레이시:
관찰력
기준치: 75/37/15
굴림: 36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이 촛대, 오드의 집에 있었던 은 촛대와 똑같이 생기지 않았나요?
 
레이시:……. (예전에 어떤 도둑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던 것이 떠올랐다. 빵 하나를 훔쳐 감옥에 갔다지. 그곳에서도 은 촛대가 나왔던 듯 한데.)
 
오드:(당신의 주위를 기웃거리던 오드가 슬그머니 자리를 피했다.)
 
레이시:(그는 책을 읽으며 도둑의 편이었다. 자리를 피하는 오드를 못 본 척 하며, 회의 기록을 살펴보았다.)
 
'회의 기록'이라 적힌 종이 뭉치는 수기로 작성되어 있습니다. 인명은 전부 잉크로 지워져 있고 조금 알아보기 어려운 필기체로 휘갈기듯 적혀 있어, 꽤 주의를 기울여야 겨우 읽힐 것 같습니다.
 
레이시:(주의! 어텐션! 기울여봄.)
 
16XX. XX. XX
 
 ▒▒▒▒▒▒가 마술을 부리는 모습을 목격하였다는 제보가 속출. ▒▒▒는 ▒▒▒▒▒▒가 '찻집에서 호수가 보일 정도로 맑은 날에 거짓말처럼 안개를 만들어 시야를 흐리게 하였다'고 주장하였으며 ▒▒는 ▒▒▒▒▒▒가 '자신의 남편을 홀려 집안의 장작 따위를 갖다 바치게 하였다'고 주장. ▒▒▒▒▒▒가 마녀일 가능성에 대한 논의 시작.
 
더 읽을까요?
 
레이시:…. (더 읽는다.)
 
16XX. XX. XX
 
▒▒▒▒▒▒가 최근 해도 뜨지 않은 새벽에 호수에 가는 모습을 자주 목격하였다고 함. 사특한 것이 있을까 싶어 익일 저녁에 마을 사람들 일부가 함께 호수에 가 보았으나 어떠한 것도 확인할 수 없었음.
 
더 읽습니까?
 
레이시:(읽는다.)
 
16XX. XX. XX
 
일주일 전 ▒▒▒▒▒▒와 크게 싸운 ▒▒▒▒▒▒▒▒▒▒가 ▒▒▒▒▒▒와 다시 잘 지내는 모습을 목격. ▒▒▒▒▒▒▒▒▒▒를 추궁하니 '자신은 단 한 번도 ▒▒▒▒▒▒를 진심으로 미워한 적이 없으며 ▒▒▒▒▒▒는 정말 괜찮은 여자다'라고 주장.
 
16XX. XX. XX
 
▒▒▒▒▒▒가 외출한 사이 ▒▒▒▒과 ▒▒▒▒▒▒▒▒▒▒▒가 ▒▒▒▒▒▒의 집에 접근하였음. 내부에서 불온한 주술이 적힌 책을 발견─▒▒▒▒▒▒의 수기로 적혀 있었음.
 
16XX. XX. XX
 
▒▒▒▒의 남편 ▒▒▒▒▒▒▒▒▒▒가 또 다시─대략 두 달쯤 전의 전적이 있음─▒▒▒▒▒▒에게 의상 선물을 보냄. ▒▒▒▒▒▒▒▒▒▒를 추궁하니 '자신은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다. 무슨 소리냐'라고 주장.
 
16XX. XX. XX
 
▒▒▒▒▒▒▒▒▒▒가 '자신이 잠시 ▒▒▒▒▒▒에게 홀렸으며 그러므로 제가 한 것은 간통이 아니다'라고 주장.
 
16XX. XX. XX
 
익일 오전에 어린 아이를 제외한 마을 사람들 전체를 불러모을 것, 실패가 있어서는 안 됨.
 
마녀가 요사스런 마술을 부려 빠져나올 것을 대비하여 단번에 확실히 처리할 것
 
<자료조사> 혹은 <지능> 판정.
 
레이시:
지능
기준치: 55/27/11
굴림: 56
판정결과: 실패

 

자료조사
기준치: 50/25/10
굴림: 96
판정결과: 실패
지능
기준치: 55/27/11
굴림: 67
판정결과: 실패
자료조사
기준치: 50/25/10
굴림: 17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굳은 머리를 굴려 겨우 떠올려봅니다.
 
어쩌면 이것은…이 마을에서 자행되었던 마녀 사냥의 기록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레이시:(그는 왜 이미 마녀가 누군지 알면서도 이 해묵은 기록들을 들춰보았나.)
(미련 없이 종이를 찢어내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당신을 돌아보며 희미하게 웃는다.)
……남은 곳은 한 곳 뿐이로군요.
 
오드:(종이가 찢겨 나가는 소리에 뒤를 돌아본다. 시선이 마주치면 함께 웃었다.) 정원으로 갈까요?
 
레이시:(자연스럽게, 그는 당신의 손을 그러잡았다.)
 
두 사람은 손을 붙잡은 채 교회를 나섭니다.
 
<행운> 판정.
 
레이시:
기준치: 80/40/16
굴림: 92
판정결과: 실패
기준치: 80/40/16
굴림: 84
판정결과: 실패
기준치: 80/40/16
굴림: 19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누군가 두 사람의 앞을 가로막습니다. 모자를 깊게 눌러쓴 채 얼굴을 가린 사내입니다.
 
얼굴이 보이지 않아 나잇대를 짐작하기 어렵습니다만, 그가 입을 열면 놀랄 만큼 거칠게 갈라진 음성이 들려옵니다.
 
: 이봐. 이방인 주제에 어딜 마음대로 돌아다니는 거야. (험악한 분위기로 지껄인다.) 엉? 저 여자 집에나 얌전히 쳐박혀 있을 것이지.
 
레이시:(건조한 눈으로 바라보다, 가만 물었다.) 이 마을 사람입니까?
 
: 그래, 이 자식아. 보면 모르나? (노골적인 적대감을 드러냈다.)
 
레이시:(돌연 이 상황이 피곤해졌다. 그가 노골적인 동작으로 검을 빼들어 겨눴다.) 이제 처박혀있어야 할 사람이 누구 같습니까?
 
: 씨발, 이제는 아주… (검이 내밀어지자 사내가 반사적으로 움찔했다. 붉게 충혈되어 원망서린 시선으로 오드를 한참 노려보더니 땅을 한 번 걷어차고는 몸을 돌려 사라진다.) 개자식들.
 
오드:(당신의 뒤에 붙어 서서 제법 앙칼진 얼굴을 하고 있던 오드가 당신을 올려다본다.) 괜찮아요, 레이시? 저 사람들, 참 무례해서… 제가 죄송해요. (괜시리 울상을 지어 보이곤.)
 
레이시:(아마 당신의 그런 얼굴을 보았더래도 그는 이미, …….) ……괜찮습니다. (아마, 집에 돌아가게 된다면 물어볼 말이 있겠지만. 눈을 감았다 뜨며 칼을 집어넣었을까. 걸음을 마저 옮겼다.) 다만, 황성으로 돌아가 보고해야 할 상황을 더 생각해보고 있었습니다.
 
오드:뭐어, 굳이……… 그렇게까지는. (눈동자가 데구르르 굴러갔다. 찔리는 게 있는 쪽은 오히려 그녀였기에. 그냥 당신의 팔을 잡아당겨 정원으로 이끈다.) 참, 정원은 이쪽인데요. 예전에는 봐줄 만 했었는데… 지금은 볼품없어요. 그래도 어느 정도 구색은 갖춰 있을걸요. 아마도.
 
마을 정원
 
잡초만이 무성히 자라 쇠락하는 마을의 정원입니다.
 
가로수는 잎이 제멋대로 자라 엉망이고, 꽃들은 전부 시들어 고개를 꺾고 있습니다.
 
바닥에 깔린 깨진 돌길과 정도를 모르고 자란 들꽃만이 한때 이 정원이 제법 깔끔하게 관리되던 아름다운 정원이었음을 짐작케 합니다.
 
레이시:……그대가 새롭게 가게 될 곳은, 이곳보다 훨씬 나을 겁니다. 우선은 제가 최대한 빨리, 괜찮은 집을 구해드리죠. (너무 과한 친절 아닌가?)
 
오드:제가 너무 부담을 드리는 게 아닐까요? 저는 방 한 칸, 몸 뉘일 곳만 있어도 충분한데요… (미안하다는 말투였지만 들뜬 기색이 엿보인다. 수줍게 시선을 떨군 채 발 끝으로 흙길 위에 원을 그리며.) …기사님은 정말 다정하시네요. (내게만 그런가요?) 저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데.
 
오드는 그러더니 먼저 한 걸음을 나아갑니다.
 
발자국 새겨진 자리 위로, 흙에 절은 종이 조각 하나가 떨어져 있습니다.
 
레이시:(그는 태연하게 종이를 주워들어 읽었다. 흙을 털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무언가를 바라고 돕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그것이 마땅하니까요.
 
오드:그거 아세요? (어딘가 음울한 듯, 그러나 낭랑한 음성.) 제게 그런 말씀을 해 주시는 분은… 레이시가 처음이에요. (목소리가 한 걸음 멀어졌다. 당신을 기다리지 않고 총총 걷는다.)
 
흙탕물에 굴러 글자만 간신히 읽히는 종이 쪽지입니다. 정말 어지간히도 오래 흙에 처박혀 있었나봐요.
 
누군가 급히 휘갈긴 마냥 엉망인 글씨는 군데군데만 간신히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레이시:(자신 같은 사람이 당신에게 이미 존재했다면, 그랬다면. …제게 당신의 손을 잡을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겠지. 그 생각을 하는 바로 막대한 죄책감과 자기혐오가 쓰나미처럼 밀려들어왔다. 쓰레기 자식. 속으로 자신을 지탄하며 뒤늦게 당신의 뒤를 쫓았다.) 이 마을에서의 기억은, ……잊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러하니.
 
오드:네, 다 잊을게요. (당신이 다가오면 제가 먼저 손을 꼭 붙잡았다.) 전부 다… 지울 거예요.
 
두 사람은 천천히 정원을 빠져나옵니다.
 
광장에 들어서자 어김없이 거친 시선들이 꽂히는군요.
 
당연하지만, 마을 주민들의 것입니다.
 
주민들은 어슬렁대며 이 쇠락한 마을을 누빕니다…… 정작 마을의 시설들은 단 하나도 사용하지 않은 채.
 
목적 없는 배회, 꽂히는 시선이 등줄기를 서늘하게 만듭니다.
 
그들은 마치 당신과 오드를 감시하기 위해서, 그 외의 어떠한 목적도 지니지 않은 채 이 마을을 돌아다니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집으로 돌아갈 시간입니다.
 
3일차, 오후.
 
벌써 오드의 집에서 묵는 것도 오늘로 사흘차입니다.
 
마을의 중심부에서 제법 떨어져 상당히 한적한 장소에 위치한 오드의 집은 다른 가정집들과도 유난히 고립된 느낌이 있습니다.
 
집에 들어선 후 평소처럼 화로에 불을 피운 오드가 찬장을 연 후 곤란한 표정을 합니다.
 
오드:음… 잠시만요. 우유와 버터가 다 떨어졌어요. 이래서야 저녁을 준비할 수 없겠는걸요. (무릎을 탁탁 털고 일어난다.) 먹을 것 좀 사올게요. 금방 다시 돌아올 테니 레이시는 여기서 기다려요!
 
오드는 그 말과 함께 테이블에 놓인 램프를 다시 들어올립니다. 붙잡을 새도 없습니다.
 
오드:정말 금방 돌아올 테니 꼭 얌전히 집에 계세요. 꼭이요. 램프도 없으니 행여 밖에 나갈 생각일랑 마시구요.
 
레이시:……밤 중에 혼자 나가면 위험합니다. (그는 당연히 당신을 말리려 했으나!)
 
그러더니 쌩 나가버리는 오드.
 
레이시:(했지만,,,)
(,.,,..,.......)
.............................................................................
 
…당신은 외로이 혼자 남겨집니다.
 
레이시:(덩그러니.)
....
,.,.,..,........
 
어제와 별반 다를 것이 없는 오드의 집입니다. 하지만 오드가 사라지고 나자 어쩐지 아늑한 느낌보다도 되려 쓸쓸하고 스산한 느낌이 공기를 무겁게 짓누릅니다.
 
레이시:(문가를 어슬렁~어슬렁)
 
[ 현관 / 선반 / 테이블 / 화로 ]
 
레이시:…….
(할 게 없다. 현관 근처만 서성거렸다.)
 
말린 꽃 몇 송이와 작은 빗자루가 놓여 있고 밀어 여는 문이 달린 현관입니다.
 
현관의 구석에는 작은 자루가 하나 보입니다.
 
레이시:(문을 살핀다.)
 
밀어 여는 형식의 나무 문입니다. 굳게 닫혀 있는 것을 제외한다면 별다른 특이사항은 없습니다.
 
레이시:(현관 구석의 작은 자루를 살펴본다.)
 
현관의 구석에 덩그러니 던져져 있는 자루로, 적당히 느슨히 묶여 있어 줄만 끄른다면 쉽게 풀릴 것 같습니다.
 
레이시:(줄을 풀어 입구를 열어본다.)
 
자루의 안에는 양초가 한가득 들어 있습니다.
 
마을의 잡화점을 통째로 털어도 이만큼의 양초를 구할 수 없을 겁니다. 몇 년을 써도 남을 것 같네요.
 
레이시:…….
 
<지능> 판정 가능.
 
레이시:
지능
기준치: 55/27/11
굴림: 10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똑똑히 기억납니다. 교회 내부에는 촛대만 덩그러니 남아 있을 뿐 초는 전혀 보이지 않았죠.
 
레이시:(예상하고 있던 바였으나, 직접 눈으로 보니, 이건. ……글쎄다. 명확하게 말하기가 힘들다.)
(선반을 살핀다.)
 
선반 내부에는 여러 잡동사니들이 들어 있습니다. 다양한 주전자와 식기, 접시 등……
 
오드의 입맛은 정돈되지 않고 꽤 지리멸렬한 모양인지, 어쩐지 모여 있는 잡동사니들 사이에서 일관된 취향을 찾을 수 없습니다. 크게 눈에 띄는 것은 없는 것 같기도 합니다.
 
<관찰> 판정.
 
레이시:
관찰력
기준치: 75/37/15
굴림: 90
판정결과: 실패
관찰력
기준치: 75/37/15
굴림: 54
판정결과: 보통 성공
 
그런데 이 선반 안에 들어 있는 것들, 전부 어디에서 본 것 같은 것들이네요. 정확히 하자면 마을에서요.
 
레이시:(테이블을 본다.)
 
이전에 보던 것과 별반 다를 것 없는 테이블입니다. 테이블 아래에 작은 자루가 하나 보입니다.
 
레이시:(자루의 줄을 풀어 안을 살펴본다.)
 
자루는 몹시 단단히 묶여 있습니다.
 
<손재주>의 어려운 성공 이상 가능.
 
레이시:
손재주 Roll
기준치: 20/10/4
굴림: 67
판정결과: 실패
…….
(깔끔히 포기했다.)
(칼로 자르면 티가 날 테니.)
(화로를 보자.)
 
레이시는 깔끔히 자루를 내려놓습니다. 자루의 안에서 달그락대고 짤랑이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합니다.
 
주전자가 올려져 끓고 있는 화로입니다. 화로 위에는 작은 찻잎 상자가 올려져 있습니다.
 
레이시:(오드가 돌아오려면 오래 걸리려나. 찻잎을 꺼내서, 그는 차를 끓이기 시작했다. 능숙한 손길이다.)
 
당신은 능숙한 손길로 차를 만들려 했으나…… 상자 안은…… 비어 있습니다.
 
레이시:…….
 
손끝이 허공을 스칩니다.
 
레이시:,.,..,......
(그렇군.)
(그럼 그는 무슨 쓸모가 있 지?)
(,,,)
(그는 아무런 쓸모 없이 얌전히 , , ,, , ,오드를 ,, , , 기다렸다.)
 
…이 찻잎 상자, 찻집에 있던 상자들과 똑같이 생긴 것 같네요.
 
레이시:,,,
(그렇군.)
 
바람이 불어 창문이 거세게 덜컹거립니다.
 
현관문은 그러나 잠잠하네요.
 
무언가 무거운 물건으로 가로막은 것처럼.
 
레이시:…. (현관문을 열어본다.)
 
분명 오드가 나갈 때까지만 해도 매끄럽게 열리던 문이 열리지 않습니다. 무언가 단단하고 무거운 것이 밖에 놓여 당신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이거, 오드가 문을 밖에서 막아두고 나간 건가요?
 
<정신력> 판정.
 
레이시:
정신
기준치: 75/37/15
굴림: 26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하지만 이상하잖아요, 오드가 왜 이런 짓을 하죠? 분명 당신에게 아주 살갑고 호의적이지 않던가요?
 
당신을 이 집 안에 가두기 위해서였을까요? 그도 아니라면, 무언가 아주 불길한 것에서부터 지키기 위해서라든가…….
 
그때 집 바깥에서 울리던 발소리가 서서히 가까워집니다.
 
그리고 나서 이어지는 정체 모를 소리,
 
<듣기> 판정.
 
레이시:
듣기
기준치: 60/30/12
굴림: 29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아마도 어떤 무거운 것을 질질 끌어 옆으로 치우는 듯한.
 
문이 열리고 찬 바람을 온몸에 잔뜩 묻히고 온 오드가 발갛게 상기된 뺨으로 들어섭니다.
 
그녀는 불빛이 얼룩지는 램프와 빵과 달걀 따위로 차 있는 바구니를 테이블에 내려 놓고서 당신에게 다가옵니다.
 
오드:정말 금방 다녀왔죠? 어서 앉으세요. 식사를 준비해 드릴게요.
 
<지능> 판정.
 
레이시:
지능
기준치: 55/27/11
굴림: 93
판정결과: 실패
(그는 당신의 앞에 존재할 때마다 종종 어떤 생각도 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서,) ……다음부턴 이러지 마십시오.
 
당신은 이 마을의 상권이 이미 오래 전 쇠락했다는 사실을 떠올립니다.
 
그러나 그게 무엇이 중요할까요.
 
오드가 당신을 향해 한아름 웃습니다.
 
오드:그럴게요.
 
식사를 마치고 나면, 오드는 어제 그랬던 것처럼 꾸벅꾸벅 졸기 시작합니다.
 
오늘도 마찬가지로 자신을 깨워달라는 약속을 받아내고는 눈을 감는군요.
 
레이시:……. (그는 말 없이 상대를 반쯤 안아들어 자리에 눕혔다. 단단하게.)
 
오드의 재잘대는 목소리가 사라지고 나면 집안은 다시 고요해집니다.
 
장작불 타닥이는 소리만이 간간히 들려옵니다.
 
레이시:(……노트를 살펴보자.)
 
어제 채 해독하지 못했던 부분부터 글을 읽습니다.
 
*노트의 2회차 연구가 완료되었습니다.
 
시간이 부족하여 해석이 아주 완벽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대략적인… 내용은 알 것 같습니다.
 
SANC 1/1D2.
 
레이시:
SAN Roll
기준치: 75/37/15
굴림: 2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
(조용히 숨을 들이켰다.)
 
오드가 몸을 뒤척입니다.
 
호수의 진실을 알게 된 기분이 어떤가요, 레이시?
 
레이시:(글쎄, 확실히 충격적인 진실이었던지라, 그는 들이킨 숨을 한참 내뱉지 못하고 있었다. 사람을 끌어들이는 호수. 잠든 오드를 바라본다. 그래서, 교대하듯 잠을 잔 것인가? 마을 사람들이 이미 죽어있었단 사실도, 오드가 유일하게 살아남은 사람이란 것도 아귀가 들어맞기 시작했다. 3개월 전에 마을 사람들이 모종의 이유로 다 죽어버린 건 아닐까? 아마도, 오드로 인해.)
…….
(그럼에도 그는 계속 숨을 쉬어야 했으므로, 오드의 어깨를 붙잡아 흔들었다.) 그대.
 
오드:(몸을 흔드는 손길에 천천히 눈을 뜬다. 시선이 마주치면 반사적으로 웃음이 피었다.) 레이시…….
 
레이시:(어떻게 그런 얼굴 앞에서, 그대가 정녕 마녀입니까? 하고 물을 수 있었나. 그는 도무지 떨어지지 않는 입술을 열었다.) ……또, 할 일이 있으십니까?
 
오드:응… 네에. (기지개를 쭉 펴곤 순한 낯으로 당신을 바라본다. 복잡한 심경을 조금이라도 알긴 하는지, 그저 허물 없이 웃는다.) 오늘도 잘 자요, 레이시. 내일 봐요.
 
레이시:……내일 보지,
그대. (오드, 속으로만 읊조려보았다.)
 
당신의 침묵으로 모든 진실은 하룻밤의 유예를 얻습니다.
 
피로한 정신이 깊은 잠에 빠져듭니다.
 
 
<정신력> 판정.
 
레이시:
정신
기준치: 75/37/15
굴림: 53
판정결과: 보통 성공
 
어쩐지 비강에 끈적하게 달라붙는 비릿한 물 내음이 맡아지고, 누군가 당신의 팔을 잡아 붙드는 느낌이 듭니다.
 
눈을 뜨자 썩어 문드러지고 갈라진 피부를 한 마을 주민들이 당신의 팔을 붙잡고 있었습니다.
 
밤하늘에 뜬 달보다도 더 창백하고 새파랗게 질린 얼굴과 움푹 꺼져 퀭한 눈, 그들이 소름끼치게 웃으며 속삭입니다.
 
: 그분이 너를 원하셔, 그 증오스럽고 모독적인 분께서…….
 
SANC 1/1D2.
 
레이시:
SAN Roll
기준치: 74/37/14
굴림: 83
판정결과: 실패
rolling 1d2
(
1
)
 
=
1
 
당신은 끔찍한 마을 주민들의 환영을 보며 잠에서 깨어납니다.
 
눈앞에는 오드를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저 화로에서 장작이 타닥이며 타들어가는 소리만 들릴 뿐입니다.
 
오드:더 자요, 레이시.
아직 새벽이랍니다.
 
부드러우나 단호한 목소리가 당신의 의식을 붙잡습니다.
 
당신의 어깨를 단단히 짓누르며 다시 푹신한 침대로 밀어붙입니다.
 
안온하고 따스한 느낌이 전신을 나른하게 감싸안고 토닥입니다……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된 무뢰배라도 이처럼 온몸의 감각이 무디지는 않을 겁니다.
 
4일차, 오후.
 
달그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당신은 잠에서 깨어납니다.
 
어제 많이 피곤했나요?
 
벌써 시간이 한참 지난 오후입니다. 해가 중천에 뜨다 못해 기울어질 무렵이네요.
 
오드:많이 피곤했나봐요. (당신이 깬 것을 발견했는지 웃으며 다가온다.) 잘 잤어요, 레이시?
 
그녀는 이 모든 일이 진심으로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습니다─아니, 오히려 당신이 제 집에 묵으며 제 보살핌을 받는 것이 매우 기쁜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렇게 만발한 덤불장미처럼 웃을 수 있을 리 없으니까요.
 
레이시:(그는 다시금 피곤에 젖은 낯을 손으로 문질렀지만, 오늘도 역시 몸을 일으킨 뒤엔 말끔한 얼굴을 지었다.) ……깨우지 않으셨네요. (질책하는 투는 당연히 아니었다.) 혼자 심심하진 않으셨습니까?
 
오드:음, 피곤해 보이셔서요. 자는 얼굴 구경하는 것도 제법 재밌던데요? (장난스런 미소.) 조금 늦었지만… 오늘도 나가실 거죠? 식사 준비해 드릴게요.
 
레이시:……절, ……보셨습니까? (말이 조금 이상한데. 살짝 당황한 채 헛기침을 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예, 오늘도 나가야겠습니다. 식사는, ……같이 준비하도록 하죠. (후다닥! 옆으로 와서 돕자!!)
 
오드:글쎄요. 봤을까요, 아닐까요~. (능청스레 말꼬리를 늘리다가.) (앗!!) (또 혼자 음식 준비하는 재미를 빼앗겼다. 괜찮다고 말해봐야 통하지 않을 것을 알았기에 툴툴거리며 식기를 내온다.) 가만히 계셔도 된다니까요….
 
레이시:(그저 침묵했다.) ……재료 손질은 제가 해두겠습니다. (손을 씻고, 식칼을 들 뿐.)
 
식탁은 조용할 날이 없군요.
 
그러나 퍽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두 사람은 식사를 끝마칩니다.
 
노을지는 하늘을 뒤로한 채 몸을 가까이 붙이고 마을로 향해 걷습니다. 귀엣말을 속삭이는 연인들처럼.
 
마을 입구에 막 들어섰을까요. 주위를 둘러보던 오드가 갑자기 짧은 비명을 내지릅니다.
 
오드:앗!!!
세상에, 저 어제 들렀던 정원에 목걸이를 두고 온 것 같아요. 잠시 여기에서 기다려 주시겠어요?
 
레이시:?
 
오드는 당신이 대답하기도 전에 급히 당신을 두고 달려나갑니다.
 
레이시:……목걸이? 잠, 잠깐,
그대!!!
(또!!!!!!!)
(남겨졌나?!?!?!?!?!!!)
 
…홀로 남겨졌습니다.
 
오드는 당신이 대답하기도 전에 급히 당신을 두고 달려나갑니다.
 
레이시:,,,,,,,,,,,,,,,,,,,,,,,,,,,,,,,,,,,,,,,,,,,,,
 
<지능> 판정.
 
레이시:(또?
지능
기준치: 55/27/11
굴림: 54
판정결과: 보통 성공
 
그나저나 목걸이를 두고 왔다니요, 대체 어떻게 그럴 수 있죠? 목걸이가 손에 들고 다니는 소지품이라도 되나요?
 
아무튼 오드는 발이 참 빠르네요. 실없는 생각만 듭니다.
 
그리고 그렇게 오드가 사라진지 오 분이 채 되지 않아서,
 
아이:……저기요, 잠시만요, 기사님…….
 
옷자락 끝이 붙잡히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반사적으로 내려간 시선에 들어오는 것은 남루한 차림새의 한 아이입니다. 눈이 마주치고,
 
심장이 내려앉는 느낌이 듭니다. 아이의 얼굴은 녹색 반점으로 얼룩덜룩하고, 온몸에서는 지독한 고기 썩는 냄새가 납니다.
 
가뭄 온 육지마냥 갈라지는 목소리, 인간보다는 차라리 온몸에 곰팡이가 펴 썩어들어가는 시체에 더 가까운 몰골.
 
눈 뜨고 보고 있으면서도 믿을 수 없는 광경, 산 채로 부패하고 있는 인간을 마주하자 정신이 아득해집니다.
 
SANC 1/1D2.
 
레이시:
SAN Roll
기준치: 73/36/14
굴림: 32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당신이 무언가를 더 하기도 전에 아이가 급히 말을 잇습니다.
 
아이:그 여자를 조심하세요……, 그 여자가 당신도 이 꼴로 만들어버릴 거라고요. 우리 마을은 원래 이토록 쇠퇴한 곳이 아니었어요, 평화롭고 안온하던 우리 마을에, 그 마녀가…… 그 마녀가 어떤 신에게 바쳐서, 그 마녀가 저주를 걸어서…….
 
곰팡이 같은 털과 녹색 반점으로 뒤덮인 아이가 곧 꺼질 것 같은 애처로운 목소리로 말을 잇습니다.
 
익어 떨어지는 보리수보다도 새빨간 피눈물이 썩어 문드러진 살결을 타고 흐릅니다.
 
아이:그 여자, 어떤 삿된 신을 추앙하고 숭배하는 마녀라고요……! 정신 차려요, 기사님, 지금이라도…… 지금이라도 그 여자의 손아귀 안에서 도망치셔야…….
 
그러나 바람 앞 촛불만큼 힘없는 목소리는 더 이어지지 못합니다.
 
퍽. 둔탁한 소리가 울리고 작은 몸이 힘없이 무너져 내립니다. 그리고 그 앞에 선,
 
그 앞에 선, 창백하게 질린 얼굴의 오드…….
 
마치 물고기의 내장처럼 연약하고 또 새벽의 이슬처럼 무구하기 짝이 없는 얼굴로, 오드가 웃습니다.
 
작위적으로 무고한 사람을 흉내내려다 어정쩡하게 힘이 들어가 이도 저도 아니게 된 목소리가 흘러나옵니다.
 
오드:하, 하하, 무, 무슨 헛소리람…. (울 것 같은 얼굴로 애써 웃음을 지으려는 표정이 기묘했다. 그러다 당신과 눈이 마주치면 빠르게 무너지는 낯빛.)
레이시…… 아니에요. (떨리는 눈동자로 당신을 바라보던 여자가 손에 쥐고 있던 피 묻은 각목을 떨어트렸다. 딱딱한 나무가 바닥을 구르는 소리 선명하다. 홀린듯이 걸어 당신에게로 가까이 다가선다.) 전부 거짓말이에요, 믿지 마요. 나는 무고해요, 정말이에요….
내가 말했잖아요. 이 마을 사람들, 항상 나를 미워했어요. 지긋지긋하기 짝이 없는 인간들! 매번 끝까지 이래! 내게 누명을 씌우려는 거예요. 응? 제발… (갈무리되지 못한 감정이 끓어 넘쳤다. 순간 쏟아내는 어조가 지독히 거칠어졌다가, 다시 돌변하여 애처롭게 속삭인다. 당신의 동의를 구하듯 옷자락을 붙잡고 매달렸다.)
날, 오직 나를 믿어야 해요.
 
레이시:(역한 사체 냄새는 이것이 결코 꿈이 아니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 뒤로 눈이 마주치는 당신, 그대, 오드. 이미 자신은 당신의 일기를 보았으니 두려워할 필요 없다고, 그리 말해주어야 했는데. ……이미 죽은, 죽은 것보다 더한 고통을 받는 아이를 바라보면, 바닥으로 쓰러져 뭉개진 고깃덩어리를 바라보면 이전과는 달리 미약한 동정심이 떠오르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리라. 흔들림을 붙잡는 것은 오로지 한 가지였다. 자신을 바라보는 당신의 눈과 그 속에 든 불안감, 애처롭게 저를 붙잡는 당신의 손길. 그것만이.)
……그대가 마녀인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것이 상징이든, 진실이든간에.) 이 말을 지금, 하게될 줄은 몰랐지만. (그는 아직까지 당신의 손을 붙잡아주지 않고 있었다.)
 
바닥에 쓰러진 아이는 몇 번 더 손을 꿈틀대다 이내 잠잠해집니다.
 
창백하게 질린 그믐달빛이 푸석한 머리카락을, 피눈물과 녹색 반점으로 얼룩덜룩한 피부를, 떨어져나간 손톱과 끔찍하게 썩어들어간 사지 끝과 거품을 물고 벌어진 입술을 비춥니다.
 
SANC 1/1D10.
 
레이시:
SAN Roll
기준치: 73/36/14
굴림: 72
판정결과: 보통 성공
 
오드:무슨, 그게…… 어떻게… (당신의 선언에 크나큰 충격을 받은 사람처럼 오드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저도 모르게 중얼이다가 스스로 놀라 말을 멈춘다. 불안으로 얼룩진 눈동자. 죄 지은 것처럼 움츠러든 양 어깨. 손등에 핏줄 돋을 만큼 주먹을 움켜쥔 채 날카롭게 소리친다.) 아냐, 아니야! 나를 마녀라고 부르지 말아요! 날─ 그런 눈으로 봐서는 안 돼요. 당신만큼은!
(이 마을의 모든 생명을 죽음에 바치는 순간에도 망설인 적 없었을 여자였다.)
(단지 당신 앞에서 겁을 먹는다.)
 
오드는 한참 숨죽여 흐느끼다가 엉망이 된 얼굴을 하고서 당신을 바라봅니다. 눈물이 가득 고인 눈으로 내뱉는 소리가 가관입니다.
 
오드:정말이야…. 나, 나는 결백해요…… 신을 걸고 맹세할 수 있어요, 나의 무고와 순수를. 나는 마녀가 아니라…….
 
물기 어린 눈동자에 핏발이 섭니다. 횡설수설 자신의 무고함을 증명하려 애를 쓰던 오드의 표정이 무너져 내립니다. 진실을 감추려 구걸하던 음성은 금세 돌변하여 금방이라도 욕설을 뱉어낼 듯 거칠어집니다.
 
오드:내 잘못이 아냐……! 저것들이 저렇게 뒈져버린 건 내 잘못이 아니에요! 저것들이 햇빛 아래에 오래 나와 있지만 않았더라도 저 꼴로 죽어버리지는 않았을 거라구요, 미개하고 멍청한 돼지 새끼들! 제발 날 그런 눈으로 보지 말아요, 레이시. 내가 당신을 지켜줄게요. 당신만은 저런 꼴로 추접스럽게 죽어버리지 않도록 갖은 힘을 다하겠어요, 나는, 내가…
나 당신을 사랑해요……. (울 것처럼 사랑을 고백한다.)
 
SANC 0/1.
 
레이시:
SAN Roll
기준치: 72/36/14
굴림: 70
판정결과: 보통 성공
 
달빛이 빗물처럼 쏟아져 오드의 번들대는 눈동자를 비추고, 부패하는 고기의 썩은내와 호수의 물비린내를 머금은 공기가 바람을 타고 달음박질쳐 당신의 후각을 마비시킵니다.
 
아주 새삼스럽게도 풀벌레 우는 소리가 들리고 깜빡이며 흐릿한 빛을 내는 반딧불이들이 보이는군요.
 
그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그 여느 때와도 다르지 않게.
 
클로디어스가 혈육의 귓가에 쏟아부은 사리풀 독즙이 꼭 이런 종류의 것이었을까요.
 
당신의 귓가로 살을 썩히는 음습한 단어들이, 질척이며 썩어들어가는 사랑 노래가 줄줄이 쏟아집니다.
 
눈시울을 잔뜩 붉힌 채, 열병을 앓는 어린 소녀 같은 얼굴을 한 오드가 마치 옛 찬송가를 부르는 것처럼 사랑을 속삭이고 애정을 구걸합니다.
 
저주스럽고 지저분하고 수치스럽기까지 한 단어들을 당신에게 속삭입니다. 그것들은 꼭 살해당하는 사람의 비명처럼 들렸습니다. 그리고,
 
아주 원초적인 본능이 당신의 뇌리에 속삭입니다.
 
아이의 경고는 틀리지 않았습니다. 마을 사람들의 분노는 분명한 방향성을 띠고 올바른 이를 지목하고 있었습니다.
 
이 여자, 마녀입니다.
 
새빨갛게 달아오른 뺨과 광기에 번들대는 눈동자와 추하게 일그러진 얼굴을 하고, 당장에라도 당신의 목을 조를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사랑을 속삭이는 마녀!
 
SANC 1/1D2.
 
레이시:
SAN Roll
기준치: 72/36/14
굴림: 83
판정결과: 실패
rolling 1d2
(
2
)
 
=
2
(그래, 마녀다! 과거, 그의 부모를 죽였던….)
(그렇지만 그는 당신을 '마녀'로 바라보지 않았다. 바라볼 수 없었다. 그는 다만 당신의 외침이며 절규며 무너짐을 죄 눈에 담다가, 당신에게로 손을 뻗었다. 마을의 사람들을 살아있지도 죽어있지도 않은 상태로 만들어버린 살인자, 그 사이로 무고한 생명이 없었다 말할 수는 없었으니, 그가 지금 하려는 행동은 하늘 아래, 당신의 죄를 조금이나마 함께 짊어지겠다고 선포하는 꼴이나 다름 없었겠지.)
(그가 당신을 끌어안았기 때문이다. 단단하게. 나지막한 숨을 내뱉었다. 평온하게.) 진정하십시오. ……제가 약속드린 것이 있지 않습니까. 그대를 이 마을에서 벗어나게 해 주겠다고, ……오드.
(당연히 그는 부모를 잃은 그 날에 갓난아기에 불과했던 여동생을 들쳐업고 뛰쳐나오며 절규하며 울부짖었으나, 그는 이미. 이미…… 당신을 사랑하고 말았으므로. 희미한 과거는 덩달아 묻힐 따름이었다.)
 
오드:(당신에게 끌어안긴다. 단단한 품에 기대어 거친 숨을 삼켰다. 바짝 긴장한 채 떨려 오는 스스로의 전신이 느껴진다.) 날… 미워하지 않아요? (제 목소리는 너무 가냘픈 탓에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았다. 힘겹게 속삭인다. 흐르는 눈물로 당신의 옷자락이 젖어들었다.) 나는 이렇게나…… 추악한…… (발 끝에 피 묻은 각목이 채인다. 역겨운 꼴로 죽어가는 아이의 시체를 피해 눈을 감았다.) …나는 조금도 순결하지 못해요, 알아요. 내가 가진 것들은 모조리 피투성이에요. 당신이 이 순간을 후회하며 벗어나길 원해도 내 곁을 영영 떠나지 못하게 만들 거예요, 내 사랑이란… 늘 그런 식으로 끔찍해요.
그래서 당신이 좋았어……
당신은 내 삶에 가장 사랑스러운 사람이라.
(당신을 마주 끌어안은 팔에 차츰 힘이 들어간다. 장미 넝쿨이 철사를 옭아매듯, 어린 아이가 처음 맛본 온기에 매달리듯. 절박하게.) 날 사랑해요? (어느 거짓 없는 물음.) 그냥 날 사랑해요, (혹은 간절한 바램처럼.) 날 외롭게 하지 말아요, 당신만큼은…… 그렇다고 말해 줘요.
 
레이시:(당신은 끔찍하고 추악하다. 걸음걸음 흙바닥 위로 핏자국만 묻어나는데, 어떻게 모를 수가 있을까. 사악한 마녀, 죄 없는 아이까지 걸어다니는 시체로 만들어버린 이, 악독한, 죽어 마땅할, 찢겨 죽어도 시원찮을, ……참혹할 정도로 아름다운 여자.) 가장? (그의 목소리에는 웃음기 하나 없었고, 당신을 끌어안은 그의 팔에는 흔들림 하나 없었다.) 그 말에 책임질 수 있겠습니까?
(장미 가시는 세게 붙잡을 수록 살결을 파헤쳐 붉은 피를 흘린다지만, 그는 이미 당신의 붉은 머리카락에 홀려도 한참이나 홀려버린 뒤였다.) 그렇다면 그대는 내 삶에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야……. (그가 나지막하게 중얼거리는 이유가 그것이었다. 매번 치열하고 각박하게 내달려왔던 삶 중에, 그는 처음으로 멈추어서서 피어난 장미꽃들을 보았다. 가시에 찔리고 베어셔 피가 흐른대도 그 꽃잎만큼은 눈을 감아도 어른거릴 듯 하여.)
(그가 고해했다.) 난 그대를 사랑해. (그는 당신이 제게 마법이라도 걸어버린 건 아닐까 잠에 들기 직전 고민했었고, 결론은 이러했다. 결국엔 마법처럼 당신을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이.) 그러니 이제 마을 사람들은 놓고, 함께 이곳을 떠나시지 않겠습니까. 그대가 가고 싶다면 어디까지라도…… 내 데려다 드릴 테니.
 
오드:그럴게요, 같이 가요, 당신과 함께라면… 떠날게요. (물기 섞인 목소리로 고백한다.) 사랑해요….
 
맹목적인 사랑─사랑?─을 속삭이던 오드가 일순, 멈춥니다.
 
위태롭게 멈추어 서서 당신을 바라보는 그녀의 입, 인간의 것이 아닌 언어가 튀어나오기 시작합니다.
 
불온한 저주, 뱀이 속삭이는 소리가 들리고……,
 
시야가 짙은 안개로 새하얗게 가려집니다. 급작스럽게도 방해당한 시야와 눈앞에 피어오른 안개가 정신을 혼란케 만듭니다. 안개요, 갑자기요?
 
SANC 0/1.
 
레이시:
SAN Roll
기준치: 70/35/14
굴림: 76
판정결과: 실패
 
거짓말처럼 짙고 또 묵직하여 호흡조차 어렵게 만드는 안개 속, 불쑥 당신의 뒤로 다가오는 인기척이 느껴집니다.
 
숨 소리와 함께 무언가 묵직한 것이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들리고……,
 
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당신은 정신을 잃습니다.
 
5일차, 새벽.
 
전신의 힘이 어딘가로 빠져나가는 느낌.
 
수면을 부유하듯 몽롱한 감각.
 
호수 깊은 곳에 빠진 것처럼 아득한 정신……,
 
그렇게 당신이 한참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을 배회하고 있을 무렵,
 
오드:…레이시?… …레이시!
 
당신의 이름을 부르는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누군가 당신의 멱을 잡고 끌어올리는 것처럼, 저 깊은 곳을 부유하던 정신이 급작스레 끌어당겨집니다.
 
번쩍, 눈이 떠지고 차가운 새벽 공기가 폐에 밀려들어옵니다.
 
욱신거리는 온몸, 초점이 제대로 맞붙지 않아 흐리멍텅한 시야에 오드의 다급한 얼굴이 들어옵니다.
 
촛불이 하나도 켜지지 않아 어두운 집안인데도, 당신의 바로 앞에서 번들대는 눈동자가 선명합니다.
 
레이시:…….
오드? (바라본다.)
 
오드:저기, 아까는 미안해요, 당신이… 혹시라도 마음이 바뀌었다고 할까 봐…. (어색한 미소를 띄었다. 머리를 내리쳐 기절시킨 사람 치고는 퍽 순진한 낯빛이다.)
상황을 설명할 시간이 부족했어요. …그보다, 어서 일어나요. 어서요! 그들이 찾아왔어요. 우릴 잡아갈 거예요, 죽느니만 못한 끔찍한 괴물로 만들어버리려고….
 
뒤늦게 상황을 떠올렸는지 허겁지겁 램프와 초를 챙기며, 오드가 다급하게 주위를 살핍니다.
 
오드:칼, 칼이 어디에 있지, 기다려요, 내가 풀어줄게요, 잠시만 기다려봐요…….
 
횡설수설하는 목소리. 그제야 당신은 당신이 의자에 밧줄로 꽉 묶여 있음을 자각합니다.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정적 속 한참 무언가를 더 챙기는 것 같던 오드가 이윽고는 당신에게로 서둘러 다시 다가옵니다.
 
창문 밖으로 새벽의 달빛이 쏟아져 들어옵니다. 난반사되는 빛에 오드의 얼굴이 창백하게 빛나고 그녀의 오른손에 들린 단도가 번뜩입니다.
 
오드:밧줄을 풀어 주면, 저와 함께 도망치실 거죠? 당신도… 당신도 나를 사랑한다고 말했으니까… (신뢰와 불안 사이에서 흔들리는 사람처럼 오드의 목소리는 잘게 떨리고 있었다. 무언가 다짐을 받아내려는 것처럼 형형한 눈동자로 당신을 뚜렷하게 응시한다.) 날 배신해선 안 돼요. 절대로, 절대로… 내가 아무리 끔찍한 마녀라고 해도 감히 날 떠나려 하지 말아요. 꼭 그래야 해요.
 
말을 마친 오드는 단도를 움직여 당신을 묶은 속박을 풀어냅니다.
 
연두빛 눈동자가 여전한 불안을 담은 채 당신을 바라보네요.
 
그녀의 손을 잡을 텐가요?
 
감히 잘도 타인을 구속하고 제멋대로 구는 주제에 절박하게 사랑을 고백하고 구걸하는 이, 철두철미하게 미친 여자를, 따릅니까?
 
레이시:(머리가 한참이나 무거워 그는 수 차례 눈을 깜빡이며 상황을 파악하려 들었다. 욱신거림은 떨어지질 않아 눈 앞을 가렸다. 당신의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상황을 설명할 시간이 부족하다고? 날 기절시키고선? 굳게 다물린 입술 안쪽으로 한숨일지 신음일지 모를 숨이 퍼졌다. 꽁꽁 묶였던 밧줄이 풀어지면 그는 길게 눈을 감으며,) 이게 대체, ……무슨 상황입니까? (당연히 그는 고통에 참을성이 강한 사내였지만, 미약한 배신감을 또 사그러뜨리지는 못했다. 아니, 당신이 남들과 사고방식이 틀린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배신감보단 난감함에 가까웠다. 그런 생각 자체가 글러먹은 것이라는 걸 눈치채지 못하고, 그는 일단, 자리에서 일어나며 당신에게 손을 뻗어 단도 쥔 손을 움켜쥐었다. 그 과정에서 저가 또다시 상처입는 것은 생각지 않는 듯 싶었다.)
……위험합니다. 날붙이는, 그러니까. ……그 전에, 도망친다고요? 이곳이 어디인데, ……누가 쫓아옵니까? (그는 최선을 다해 머리를 굴렸다.)
 
오드:레이시! (당신의 거리낌없는 행동에 새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반사적으로 손에서 힘을 풀어내자 단도가 바닥으로 떨어진다. 금속 부딪히는 소리가 날카롭다.) 다, 다치면 어쩌려구, 위험하게 뭐하는 짓이에요. 이 바보가! (심장이 반쯤 내려앉았으나 상처입지는 않은 것을 확인하고는 겨우 숨을 삼킨다. 오드는 손 끝을 잘게 떨며 당신의 손을 당장 깍지껴 움켜쥐었다.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게 하려는 것 같기도, 혹은 이런 상황에서까지 사심을 채우려는 것 같기도 한 태도로… 반쯤 울먹이며 빠르게 뱉어낸다.) 이 마을 사람들이 올 거예요. 우릴 이계의 신에게 바치려고… 그 인간 아닌 자들이… (잠깐 이 가는 소리.) 그러니까 어서 도망가요. 당신이 이 추저분한 마을에서 죽는 꼴은 볼 수가 없단 말이에요.
내가 마을에서 빠져 나가는 길을 알아요, 그러니까 어서…
 
짐승마냥 기민하게 곤두선 온몸의 감각이 저 멀리에서부터 울려퍼지는 발소리를 감지합니다.
 
오드가 말한 대로 마을의 주민들이 이 집을 찾아오고 있는 것이겠죠.
 
레이시:(새된 비명, 떨어지는 단도. 그는 적잖이 당황했고, 그보다도 더 난감해지고 말았던 것은 당신의 울먹이는 얼굴 앞이었다.) 그대가 다칠까 싶어, (낮은 음성으로 변명이라도 하듯 말하려던 때였을까. 그는 기민하게 고개를 돌려 문 바깥을 바라보았다. 발소리다. 신경이 바짝 서 그는 의식하지 못한 채 숨을 천천히 내뱉어야 했다. 이곳은 빛이 밝지 않았는데도 동공이 가늘어지는 듯 했다.) 이계의, …'신' 말입니까? (그러나 그가 재빨리 정신을 차릴 수 있었던 것은 당신이 제 손을 맞잡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손에 힘 주지 않고 잠시 생각했다. 만약 이대로 당신과 함께 돌아가게 된다면, 많은 것을 일러주어야겠다고. 예를 들면 사람의 머리를 쳐 기절시키는 행동이나 다른 이들에게 상해를 끼치는 것이라던가, 앞으로는 그런 행동들은 자제해야 할 필요가 있겠다고. 그는 당연하게, 당신과 함께할 미래를 그리며 그제서야 손에 힘을 주었다.)
좋습니다.
……함께 가죠. 어디로 가야 합니까? (일이 도통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는 없었으나. 막 눈을 뜬 때보단 당신의 붉은 머리카락이 더욱 선명한 색으로 제 눈 안에 엉켜들어왔기 때문에. 맞잡은 손은 누군가가 달려나간대도 쉽게 풀리지 않을 것 같았다.)
 
오드:…… (당신의 단단한 대답을 들으면, 그제야 이 벅찬 현실이 실감났다. 눈가에 물기가 일렁이다 오드는 기쁘게 웃었다.)
 
불편한 자세로 묶여 혹사당했던 근육이, 뻐근하게 저린 온몸이 비명을 질러댑니다.
 
하지만 굳은 몸을 풀어줄 새도 없이 오드는 당신의 손목을 붙잡고 뒷산을 향해 무작정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숨이 턱끝까지 차오르도록 달리고, 또 달립니다.
 
싸늘한 새벽에 붉게 휘날리는 머리카락,
 
이 꽃잎보다 짙고 횃불보다 뜨거운 여자가 뒤돌지 않는 걸음을 내딛습니다.
 
차가운 공기가 온 몸을 적시지만 마주 잡은 손은 여전히 따듯합니다. 살아 있다는 감각. 터질듯한 심장 때문일까, 오늘은 유독 선명하죠.
 
아마도 최대한 빠르게 마을을 가로질러 빠져나가는 길일 터인 이 산길에는 누렇게 말라붙어 죽은 잡초와 역겨운 냄새를 풍기는 꽃들이 한가득입니다.
 
말라 비틀어진 나무에서 떨어진 썩어들어가는 과일 몇 개가 달리는 당신들의 발에 채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오래 뛰고 나서,
 
마침내 산길의 끝에 도달하고 나서야 당신은 깨닫습니다. 호수로 통하는 길을 제외하고는, 이 마을에서 떠나는 출입구는 단 하나뿐입니다.
 
어떻게든 여기에서 밑으로 내려가서 마을의 출입구를 통하지 않으면 마차를 잡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마을로 내려갔다가는 저 추저분한 괴물들에게 전부 잡혀 버리겠지요.
 
이대로 끝인 걸까요?
 
마찬가지로 곤란한 낯으로 제 입술을 짓씹던 오드가 고개를 돌립니다.
 
램프의 노란 빛이 여린 얼굴에 비추어져 역광과 그림자가 집니다.
 
오드:……레이시, 저를 좀 도와주세요.
 
다소 자신 없는 투로 이야기한 오드가 제 손톱을 물어뜯다가, 마침내는 결심한 듯 눈을 부라립니다.
 
오드:나는 간단한 마술을 부릴 줄 알아요. 그중에는 거대한 파도를 불러오는 마술도 있죠. 제 힘으로는 이 마을을 전부 잠길 정도의 파도까진 만들지 못해요. 그러니 조금만 도와주세요, 레이시…… 당신이 도와준다면 더 큰 파도를 만들 수 있어요. 이 마을을 통째로 호수 밑바닥 바다 괴물이 사는 곳에 처박아버릴 수 있다구요.
 
레이시:(그는 다소 가쁜 숨을 내쉬었으나,) ……그것 말고는 방법이 없는 듯 합니까?
 
오드:… (약간 울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레이시:……. (눈을 길게 감았다.)
좋습니다.
……제가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오드:눈을 감아요. 내가… 당신에게서 받아 갈게요. (오드가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다. 당신의 뺨을 감싸쥔다.)
 
레이시:(박동하는 온기, 살아있는 자만의 것.) 무엇이든 당신의 뜻대로. (눈꺼풀이 감겼다.)
 
당신이 순순히 눈을 감으면, 기묘할 만큼 새카만 어둠이 찾아옵니다.
 
그리고 입술 위를 가깝게 스치는 감각.
 
무언가 호흡이 빠져나갑니다. 악마에게 영혼을 빼앗겼다는 사람들의 말처럼… 심장이 느리게, 크게, 감출 수 없는 경고를 울리듯 박동합니다.
 
순식간에 정신이 어지럽습니다.
 
<정신력> 판정, 3회 진행합니다.
 
레이시:(역시, 당신이 마녀가 아니라면 무엇일까. 그가 가만 생각했다.)
정신
기준치: 75/37/15
굴림: 58
판정결과: 보통 성공
정신
기준치: 75/37/15
굴림: 75
판정결과: 보통 성공
정신
기준치: 75/37/15
굴림: 34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날이 좋지 않아요. 악마가 뇌까리는 저주의 언어들처럼, 마치 이 생명에 땅에 파괴와 파멸만을 남기려는 듯이 비가 퍼붓습니다.
 
온 사방에서 비탄의 신음과 기이한 환희의 비명이 울리고 있습니다. 마치 불행한 이 마을과 당신에게 닥칠 무시무시한 재앙을 예언이라도 하듯이.
 
분명 해가 운행하여야 할 시간일진대 어둠의 장막이 시야를 가립니다. 이는 해가 차마 이 불온한 의식을 마주할 자신이 없어 숨은 결과일까요, 혹은 달이 이 구역질 나는 광증에 힘을 실으려 나타난 까닭일까요.
 
어떠한 '주문'을 외우는 오드는 바쁘게 손을 움직이며 뱀이 쉭쉭대는 듯한 소리를 냅니다. 그녀가 뱉어내는 발음 하나하나가 히스테릭하고 모독적입니다.
 
붉은 입술 사이로 뱉어내는 숨에서는 썩는 무화과와 유황의 냄새가 납니다. 아……,
 
마녀……,
 
그러니 당신의 시야 끄트머리 이 여자는 정말로 마녀가 분명하군요. 마을 전체를 어느 간악한 신에게 바치고 저주하였다는 마녀, 그리하여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갈가리 찢어 놓았을 마녀, 눈앞에서 그토록 어린 아이의 죽음을 목도하고도 눈 하나 깜빡이지 않던 마녀, 이토록 사특하고 무도한 주문을 외우는 마녀,
 
당신에게 끔찍한 지옥의 사랑을 바치는 마녀.
 
눈을 깜빡인 오드가 뱉어내듯 주문을 마칩니다. 그리고,
 
호수에서부터 거품 이는 파도가 기립하여 몰아치기 시작합니다.
 
그것은 흡사 먹잇감을 발견한 맹수에 더 가까웠습니다.
 
검고 깊은 호수의 물이, 점점이 박힌 흰 파도를 자랑하며 무섭도록 몸집을 불린 호수의 물이 자아를 가진 육식 동물처럼 거대하게 일어나서 엄청난 속도로 마을을 덮칩니다.
 
고지대에 선 당신은 이 모든 광경을, 거대하고 탐욕스러운 파도가 마을의 모든 사소하고 아무것도 아닌 것들을 집어삼키는 광경을 똑똑히 마주합니다.
 
폭풍처럼 들이닥치는 의무와 오래 전에 효력을 상실한─이 마을에 한해서─법을 마주합니다. 공포와 염증, 광신적이고 망상적인 장면을 목도합니다.
 
별안간 당신의 손에 엉키는 오드의 손가락이 마치 거미 다리처럼 느껴집니다. 한손으로 램프를 잡고 다른 손에 당신의 손을 쥐고, 한숨을 탁 내쉰 오드가 환하게 웃으며 당신을 쳐다봅니다.
 
오드:내가 말했죠, 이 마을을 통째로 호수 밑바닥에 처박아버릴 수 있다고.
 
그녀는 당신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산길을 내려가 마을의 출입구를 통해 빠져나갑니다.
 
등 뒤에서 몰아치는 폭풍우 같은 파도를, 휩쓸린 사람들의 절망적이고 광적인 비명 소리를, 이지러져 어지러운 모든 상식과 피안 저편에 내던져진 선善을 뒤로 한 채,
 
당신의 손을 꽉 잡고. 절대 놓지 않을 것처럼.
 
END 2. 영원한 사랑의 꿈을 꾸네
 
오드와 당신은 달리고 또 달렸습니다. 손을 놓지 않은 채로. 아니, 오드가 놓아주지 않은 것이던가요?
 
어느 쪽이든 마을이 검은 포말 한가운데에 깊숙이 처박힌 지금은 상관 없을 일일 겁니다.
 
그렇게 마을에서 한참을 떨어진 곳까지 달린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당신을 데리러 오기로 약속했던 마부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손을 흔들어 마차를 잡은 오드가 자연스럽게 마차에 올라타며 당신을 이끌어 제 옆에 앉힙니다.
 
: 손님, 그새 새 사람을 사귀셨어?
 
마부가 킬킬대고 오드가 뺨을 붉힙니다. 마치 지금껏 일어난 일들이 전부 사랑의 장애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것처럼.
 
마치 정말로 모든 일이 다 잘 풀리기라도 한 것처럼. 마차는 아무렇지도 않게 수몰된 마을을 뒤로 하고 달리기 시작합니다.
 
이 마을을 떠나서, 이 마을의 비극을 뒤로 하고, 이 마을의 비극을 만들어낸 마녀를 태운 채.
 
얼마 지나지 않아 둘은 마침내 시골의 풀벌레 소리에서 벗어나 그나마 잘 닦인 외곽의 길로 접어듭니다.
 
마차의 덜컹거림이 조금 잦아질 동안 까마귀들이 낮게 날며 울었습니다. 마치 무고한 이들의 운명적인 죽음을, 오드와 당신에게서 풍기는 지독한 시체 썩는 냄새를 알리기라도 하려는 듯이.
 
그러니 그들이 말 모르는 벙어리인 것이 어찌나 다행인가요.
 
5월의 장미처럼 무성한 당신들의 죄, 손에 두껍게 굳어 말라붙은 핏물이 얼음장처럼 차가운 호수의 검은 물보라에 휩쓸려 지워집니다.
 
……오드가 당신의 팔을 감아옵니다. 당신의 어깨에 몸을 기댄 채 순진무구한 얼굴로 눈을 감습니다.
 
새벽과 오전을 지나 하오로 들어서는 해를 보며,
 
: 이번에는 금방 도착할 수 있어야 할 텐데. 말이 지치지는 않을까 모르겠군. 신이시여, 자비를 베푸소서…… 아멘.
 
이 모든 일에 아무런 관련이 없을 마부가 여상스러운 어조로 중얼댑니다.
 
오드:아멘.
 
이 모든 일의 원흉인 마녀가 여상스러운 어조로 중얼댑니다.
 
어떤가요, 레이시, 당신도 '아멘'이라고 말할 수 있나요?
 
불에 달군 쇠마냥 뜨겁게 타오르는 그 단어가 당신의 목구멍을 지지고 찢어 놓지 않던가요?
 
PC 생환, KPC 생환.
 
공범 엔딩입니다. 두 사람은 마을을 물 속에 완전히 수몰시킨 후 무사히 탈출합니다.
 
PC는 1D5+10일 동안 죄책감에서 기인한 악몽에 시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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